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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주부' 앞에는 항상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미디어에서 전업주부를 묘사할 때는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평범한 주부'가 마치 하나의 단어처럼 돼 버렸다.

평범한 주부는 대체로 현재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기혼여성이자 전업주부를 일컫는 말로 쓰이곤 한다.

그리고 평범한 주부에는 대체로 

사회문화의 동향을 잘 모름, 현재 돈을 받는 일을 하지 않고 있음, 아이를 키움, 살림살이에 관심이 많음, 선량한 소시민, 가정관리가 최우선, 가족의 건강과 안위가 최우선인 희생적인 엄마와 아내 등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따라 붙는다.

유사어로는 '아줌마'가 있다.



저 이미지에서 빗나가면 '평범한 주부'가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 집안일을 하고 있지만 직장에 나가고 있으면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아줌마토크'에 관심이 없으며 사회문화 현상 분석에 관심이 많으면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일정 나이가 지났는데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역시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집꾸미기나 살림살이 절약에 관심이 없다면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범죄를 저지르거나 사회인습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평범한 주부의 대사는 '아이들 학교 보내놓고 린넨 커튼이 드리워진 테이블에 앉아 차 한잔을 곁들인 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보네요'이지,

'가족들 다 해치웠군. 자, 스카치위스키나 한 잔 할까.'가 아니다.

- 가정관리가 최우선이 아니며 여행을 자주 나가거나 어딘가 나돌아다닌다면 역시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가족구성원들이 자신보다 우선하지 않는, 희생적이지 않은 마인드의 소유자는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 그리고 남성 주부도 평범한 주부가 아니다.


주부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한 집안의 살림살이를 맡아 꾸려가는 안주인'이다.

그러나 사전적인 의미를 충족하더라도 저 위의 이미지를 충족하지 않으면 '평범한 주부'가 될 수 없다.



'평범한 주부'라는 말의 효용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주부'에 담긴 이미지들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주부라는 집단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비쳐지는지, 그 특징을 잘 드러내준다.

곧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다수 사람들의 일반적 인식이 어떤지 쉽게 알 수 있는 간편한 자료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의 일반 인식일뿐이며, 개인차를 반영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사회 현실과는 동떨어진 경우도 존재한다. 세상은 빨리 변하지만 사람 머릿속 인식은 그와 같은 속도로 바뀌는 건 아니니까.


이미 좀 젊은 사람들이라면 '평범한 주부'라는 말에 담긴 저 다양한 이미지 중 어떤 것들은 이미 낯설게 받아들이기 쉽다. 

예를 들어 요즘의 어려운 경제상황상, 맞벌이 가정이 많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사회활동을 하지 않는 (젊은) 주부는 도리어 2015년 1월의 현실로는 평범하지 않은 존재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어떤 경우에는, 사회활동에 치이며 육아 및 가사활동에 치이는 기혼여성을 평범한 주부로 일컫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그럼에도 평범한 주부라고 하면 사회활동을 하지않는 기혼여성을 떠올리는 것이 아직은 일반적이다. 그만큼 사람 머릿속 인식은 현실이 변하는 속도와는 다르게 움직인다. 지금처럼 인식이 더 느린 경우도, 아니면 오지 않은 현실을 이미 온 것처럼 더 빨리 인식하는 경우도 있겠지.


일반적 인식을 알려주는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주부라는 이 숙어는 주부란 어때야 한다..는 당위성을 심어주기 쉽다. 

왜? because 니미살고 있는 지금이순간여기는 빌빌거리며 남눈치보기가 쨩먹는 월드오브눈치랜드라서ㅋ. 




왜 '평범한 주부'라는 말의 이미지 따위가 당위성을 주는 걸까.

타인과 비슷하게 돼야 한다는 심리때문이다. 남들 하는 만큼은 해야 한다는, 평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때문이다.

주부라면 이렇게 행동해야 남과 비슷해지며, 따라서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는 룰이 '평범한 주부' 이미지 속에 압축돼 들어있다.


그렇게 안하면? 

여자는 김치ssang년이 된다. 남자라면 식물캐 젓호구새키가된다.

사실 평범한 주부라는 말의 탄생 자체가 이미 당위성을 염두에 두고 탄생한 측면도 있다.




사실은 꼭 개한민쿡 탓할 건 아니고 사회정체성같은 건 일반적 현상이니까 어쩔. 

뭐 이 나라가 좀 더 심하긴 하지만.ㅋ





p.s.1. 비슷하게 하나의 숙어처럼 사용되는 말들로, 평범한 가장 (뼈빠지게 고생하는 슈퍼파파), 평범한 직장인 (사무직으로 야근은 당연하며 하라는건 다 하는 호구노예) 등이 있다. 

사실 대부분의 숙어가 이런 분석을 해낼 수 있는 자료들이다.




p.s.2. 

혹시라도 '평범한 주부'라는 단어는 성평등에 어긋나느니 하며 써서는 안 된다고 얘기하지 말자.

원리주의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 중에, 'ㅇㅇ'는 xx라는 의미로 쓰이니까 'ㅇㅇ'를 쓰지 말자는 주장이 있는데 어휴......

그러니까, 여기선 눈치보면서 평범해지려는 모난돌 때려박기 심리가 근본적 문제인 거다. 남들과 비슷하게 행동하려는/그렇게 만들려는 심리가 문제인거지, 이미 존재하고 사용되는 말을 쓰지 말자느니 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는 거다.


말은 단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아 이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나쁘게 쓰고 있구나...하는 환기효과를 줄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의 근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거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써서는 안 되는 단어가 너무 많아져서 에브리데이 개빡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것들을 돌이켜보며, 왜 그랬어야 하나를 생각해 보면, 시발 가끔은 슴가 깊쑤키 용암이 끓는다. 존나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 쳐다보며 매직아이질 하는 꼬라지로 형성된 것들이 개많아서, 깝깝하니까.


머 이런저런 부수효과들을 생각하면 어쨌든 안 쓰는게 좋겠지만, 의도를 가지고 쓰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몰려가서 마녀사냥하는 것은 좀 자제하자는 얘기임. 현상반영과 그 안에 깔린 근본 문제는 좀 다르게 인식하자.



아시발 이성적인 척 하고 얌전하게 글 쓰다가 결국은 욕으로 끝나네ㅋ 내 클라스ㅋㅋㅋ







한줄요약 : 기승전욕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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