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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FEHACK of INTP & ADHD/INTP의 시간관리 도전기

프랭클린 플래너로 돌아갔다

1. 

그런 얘기 있잖아,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학습도구나 공부 분위기 이런거 되게 따진다고.

내가 딱 그런 케이스라서, 시간관리/일정관리를 참 더럽게 못하기에, 시간관리 도구만 맨날 찾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다이어리다. 

이제 온전히 온라인으로 넘어갈까 하고 트렐로, 아사나, 투두어쩌고 등등 각종 앱을 뒤지다가, 

역시 안 되겠어서 올해도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골랐었다.

언제나 쓰던 바인더 형태가 아닌 제본노트 형태로. 

책처럼 떡제본 돼서 순서대로 써야 하는 그런 일반적인 다이어리들말이지. 



2. 

사실 나는 작년까지 제본노트가 아닌 바인더 형태로 된 플래너만을 써 왔다. 그 중에서도 프랭클린 플래너.

내가 바인더스타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이어리 내지 순서를 내 맘대로 바꾸고 분량도 마음껏 추가할 수 있는 자유도가 나에게는 필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인더 스타일의 저렴한 시스템다이어리들이 싹 다 자취를 감춰서, 개중 고른게 그냥 프랭클린 플래너였다.


(사실 프랭클린플래너가 모델로 삼은 스티븐코비라는 사람의 목표관리 방식이 나에게 썩 잘 맞진 않는다. 프랭클린 플래너 내지를 보면 나의 사명이니 상위의 목표니 이것저것 쓰고 그 목표를 지향하며 세부 일정을 수행하며 살라고 하는데, 분명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그냥 내지 디자인이나 단어 선택이 후져서 쓰기가 싫어진다. 단어 선택을 보면, 이 다이어리가 어떤 인간형을 지향하는지가 느껴지고 나는 그런 인간형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걸 알아선지, 그냥 그게 가끔 거부감 느껴진달까. 아아... 물론 그런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가 필요한 부분만 취하면 되는데. 그리고 쓰기 싫으면 다른 걸 쓰던가 안 쓰면 되는데. 그러기엔 이 플래너 내지나 악세사리가 다양하게 잘 나와서 ㅋ 쓰기가 제일 편하더라고ㅋ. 여튼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내가 필요한 부분만 취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프랭클린 플래너를 써 왔다)


뭐 그렇다. 그냥 내 성격이 좀 이상하다. 반항심 쩔게 태어났는데 이 유치한 반항심을 다스려 사회화하려고 평생 노력하고 있으니까.



3.

올해 제본 노트 형태의 다이어리를 쓰게 된 것은, 

작년에 한참 거의 모든 정보를 기록해 둔 내 소중한 바인더형 시스템다이어리를 분실했거든. 그래서 그 충격이 너무 커서 프랭클린플래너를 다시 살 용기가 생기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이왕 잃어버린 김에 잘 생각해보니, 내가 뭘 열정적으로 종이에 써갈기는 편은 아니라서, 그냥 가벼운 수첩형태의 노트형 다이어리만 써도 사실 나에게는 충분할 것도 같았다. 

그래서 굉장히 오랜 시간동안 시중의 거의 모든 다이어리를 살펴보고, 내 생활습관을 체크해보고, 나에게 과연 맞을지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까지 다 해본 후, 지금의 제본노트 형태 다이어리를 선택했다.



4.

그러나 결국에는 못 견디고 프랭클린 플래너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쓰던 제본형 다이어리는, 1주에 두 페이지를 쓰게 돼 있던 Weekly 형태였는데, 사실 색도 예쁘고 구성도 좋고 가볍기까지 하다. 이거 고르느라 시간 많이 잡아먹기도했고.


그런데 그냥 내 성격이 하도 회피형 쩔고 비뚤어져 있다 보니까, 1주에 두 페이지만으로 할 일들을 기록하는게 너무 힘들다.

한 주의 일들을 두 페이지에 기록하다 보면, 내가 해 놓은/혹은 하려고 계획한 일들이 일주일 내내 쭉 보이거든. 

아마 건강하고 씩씩한 사람들은, 해 놓은 일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계획한 일들을 보면서 얼른 해야겠다고 동기부여를 받겠지. 

그런데 성격이 개같이 이상한 룸펜기질 나님은 성취감은 커녕,

그냥 '아니 시발 내가 이 노예질을 한거야? / 이 노예질을 계속 해야됨?'이라는 생각만 들면서 기분이 나쁘고 일을 더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ㅋ. 

게다가 주로 의무사항들만 쭉- 적혀있으니 내가 온전히 일을 위해 존재하는 노예인 것처럼 느껴지고.

기분 좋은 것들이나 개인사는 거기 같이 적기조차 싫어지고. 


5.

여튼 그런 대단히 기분파적인 이유로 

그냥 매일매일 새로운 깨끗한 종이를 봐야 기분이 좀 상쾌한 것 같아서, 

1일 2페이지를 쓰는 시스템다이어리로 컴백했다.

이제 프랭클린 플래너랑 스마트폰의 선라이즈캘린더(일정 알람용) 정도만 같이 쓰려고 함. 


아, 참고로 프랭클린플래너 쓰는 사람들은, 자기가 썼던 내지들을 고스란히 보관해 두더라고.

그런데 나는 지난 날짜의 내지는 그냥 찢어서 버린다. 무거우니까 ㅋ. 

물론 중요한 내용은 따로 메모하거나, 월간기록란에 남겨두거나, 후에 온라인으로 백업/기록해두려고 함ㅋ. 


그리고 시스템플래너 쓸 때 가죽/인조가죽 바인더를 주로 쓰던데

사실 그거 너무 무거워서 어깨 탈구될 것 같다. 그래서 좀 후지지만 그냥 플라스틱 바인더에 내지 두달씩 넣어서 쓴다.


6. 

시발 이제 좀 잘 써 봐야지. 룸펜기질 나새끼 사회화시키기 짱 어렵네. 내 기분 스스로 맞춰주고 있다 보면, 참 나같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대견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