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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잡설 + 나와 같은 날 태어난 그 아이

*

몇 달 동안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

사실 조금 정신 없이 바쁘기도 했었고, 그게 끝난 다음에는 차분히 앉아있기보다는 밖으로 나다니는 시간이 많았기에 블로그에 손이 가지 않았달까.

여하튼 그냥 써 봄.


**

오늘 꿈에 오래전에 죽은 애완동물이 나왔다. 몇 명의 연예인인지 연예인 지망생인지와 함께 어떤 계단을 내려가니 그 애가 있었다.

그 앤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였다. 아 그렇구나. 이제 다른 주인이 있구나. 자연스러웠다.

반짝거리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나름 행복하겠지.











***

오늘 불현듯 나와 같은 날 태어난 A군이 생각났다. 그 앤 어릴 때 나와 같은 반이었다.

운명을 점치는 각종 기술들에 따르면 A군과 나의 성격이 조금은 비슷해야했지만, 태어난 시간차를 감안하더라도 우린 너무 달랐다.

남에게 관심 없고 글줄이나 쳐 읽기 좋아하던 히키코모리 성향의 나와는 달리, 그 애는 무척 활달하고 약간의 폭력적인 카리스마로 아이들을 휘어잡는 타입이었다. 반에서 가장 싸움을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실제로 싸우는 걸 본 적은 없어서 사실여부는 잘 모르겠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도, 대외적으로는 그냥 대충 모범답안을 말하며 속으로는 부유한 백수를 꿈꾸던 나와는 달리, 그 애의 꿈은 당차고 확실하게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본인이 더 잘 알겠지.




당시 소극+내향의 정점을 달렸던 내 성향탓에, 내 주변에는 내가 선택한 아이들보다는 나를 선택해서 모여든 아이들이 있었다. 

유치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난 내 관심사나 성향이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괴로운 자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읽고 생각한 것을 또래와 나눌 수 없었다. 어른과 이야기 하기엔, 어른들은 나를 평가하는 느낌이 들어서 불편했다. 또래와 노는 것이 조금 낫긴 했지만, 일상에서 어떻게 행동하는게 평범한, 사회에서 인정받는 행동인지 불확실했다. 언제나 나는 스스로를 밝히기보다는 주변을 관찰하고 반응을 살펴, 어떤 행동이 '일반적인 사람의 행동'인지를 귀납법으로 결론내려 그걸 연습하는 식으로 사회에 적응해나갔다.

자연스럽게 애들이랑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잘 안 했더니 의도치 않게 신비주의 콘셉트가 형성됐다. 그 아우라를 제멋대로 동경한 (착각한) 애들이 모여들었다. 여하튼 무리가 형성돼서 같이 놀았다. 처음에는 나를 선택하여 모여든 아이들이었지만, 나는 일코 히키코모리꾼이니께ㅋ 곧 자기들끼리 관계가 새롭게 형성됐다.




같은 날 태어났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A군도 나와 함께 어울렸다. 그리고 A군은 우리 무리에 있는 B군을 웬지 매우 미워했다.

같이 떠들고 웃다가도 갑자기 A군은 웃음을 멈추고 B군에게 따져 물었다.

"너 지금 그 말이 뭐야?" 

"너 지금 나 비웃는 거야? 왜 그따위로 웃냐?"

라며 시비를 걸곤 했다.

보다 못해 처음엔 몇몇 아이들이 몰래 B군에게 말했다. 

"A군 사실 말만 저렇지 싸움 잘 못해. 몇 대 치면 그냥 바로 운대."

그렇지만 A군을 몇 대 치는 아이는 없었다.

B군은 점점 침울해졌다. B군과 어울려다니는 아이들도 점점 줄었다.




B군이 나에게 오면, 나는 B군과 함께 어울렸다. 그렇지만 B군이 내게 오지 않을 때 나는 그에게 일부러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B군이 나와 어울리는 횟수도 좀 줄었다. 내향적인 나는 원래 누구에게도 손을 먼저 내밀지 않는 애였지만, B군은 그걸, 내가 자신을 불편해한다는 증거로 봤을 수도 있다. 웬지 모르게 A가 불공정하다고 느꼈지만 나는 그것에 대항하지도 않았다.




지금 보면 존나 병신같지만, 나는 모든 게 불확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A군이 아무 짓도 하지 않고 평범하게 웃는 B군에게 "너 지금 그 말이 뭐야?"라고 시비를 걸면, A군이 개새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시 일코하느라 바빴던 나에겐 그것조차 그냥 '데이터'였다. 나는 'A군이 한 "너 지금 그 말이 뭐야?"라는 말의 의미는 뭘까', 'B군의 어떤 행동이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걸까'를 해석해서 그걸 '일반적인 사람의 행동' 법칙으로 귀납하기에 바빴다. 여기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기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내 판단이란 그저 세상에서 통용되지 않는 히키코모리 일코쟁이ㅋ의 판타지일 뿐이니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A군이 B군에게 한 행동이 일종의 왕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깨달았다기보다는 결론내렸다는 표현이 더 맞다. 

당시에 나도 이미 A군의 태도가 '불공정하다'고 느꼈으니까.







항상 남과 다르다고 느꼈지만 온전히 혼자가 되기는 싫어 보통 사람의 행동을 흉내라도 내려 했던, 불확실한 어린 시절이라고 해서,

나의 태도가 과연 용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보다는 오천만 배 사회화됐다고 생각하는 내가, 실상 그 때와 달라지긴 했을까.

여전히 나는 가치판단을 뒤로 미루려하고, 모든 상황을 일단 지켜보려 한다. 어떤 상황을 듣고 보자마자 뭔가 '옳지 않아' 하고 치밀어 오를 때가 있지만, 곧 상황을 온전히 아는 것이 아니니까 좀 더 내버려두자는 식으로 발을 빼고 관찰한다.





그렇지만 대체로, 내가 순간적으로 옳지 않다고 느꼈던 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 각종 데이터를 수집한 후에도 옳지 않다고 결론내리게 된다. 현실데이터를 수집하지만, 결론 내리는 논리주체는 결국 세상의 법칙이 아닌 내가 된다.

단지, 내가 결론을 내릴 때 쯤이면, 옳지 않다고 느꼈던 그 상황은 이미 저 멀리 지나간 후다. 지나간 상황은 돌이켜 바꿀 수 없다. 

결국 나는 처음부터 답을 알고 있었으면서 (아니,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릴 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으면서) 나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흘려 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니까, 나 자신을 좀 더 믿어보는 게 어떨까.

적어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아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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