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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물들/보기(책,만화)

[책] 마네그림에서 찾은 13개 퍼즐조각


2009년 3월 쓴 글



1.
최근 화가 마네의 위대함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이전까지의 서구 회화는 다양한 기법들을 통해 캔버스 속 그림을 마치 '실제'인 것처럼(사실은 허구인데도) 위장하려는 각종 시도를 해 왔던 것이었는데, 마네는 회화사 최초로 그림을 그냥 현실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오브제로서의 그림으로 보도록 만들었다. 즉, 캔버스 속 그림이 허구라는 점을 있는 그대로 까발리고, 그것을 그냥 인위적으로 그려진 그림으로 인지하게끔 만들었다는 것. 블라블라

마네 위대하다는 것은 많이들 접하던 내용이지만,

온늬 마네의 파격과 위대함 하나에만 몇백 페이지를 바친 책을 읽으니 마네의 위대함이 머리에 확 각인되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2. 그런데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마네의 위대함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인상파 화가들이 죄다 일빠였으며,

일본회화에 근간해 만들어진게

인상파 회화였다는 것이다.


3. 사실 일본문화가 19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에 꽤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새로운 건 아니다.

...각종 오페라나 발레 등도 자포니즘의 영향으로 창작됐으며 (제작년 쯤에 국립발레단이 무대에 올린 19세기 말 프랑스 발레 '춘향'..도 당시 자포니즘 열풍에 좀 묻어간 형태로 의심됨), 나비부인 역시 자포니즘의 영향.. etc etc

근데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에도시대 풍속화인 '유키요에'와 인상파 화가들의 유명한 작품을 1:1로, 매우 구체적으로 비교해놓은 것을 보다보니

색채사용법, 구도, 사물들을 보는 방식, 윤곽선 표현 등

어찌 보면 인상파 그림을 특징지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유키요에에서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제로 유명 화가들도 일본문화에 푹 빠져있었는데,
고흐는 대놓고 유키요에를 따라그렸고
모네는 지 마눌한테 기모노 입혀놓고 그림그려놨는데, 배경엔 유키요에들이 한가득에
다른 놈들도 뭐... 정기적으로 일빠 덕후모임들 가지는 것 하며..

암튼 인상파 회화의 근간은 뭘로 봐도 유키요에였던 것이다


4. 문화는 원래 서로 영향을 끼치고 전파되는 것이 당연하건만,

내가 왜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내 의식 속 깊숙한 곳에도,

한국인의 일본문화에 대한 보편적인 편견(경시)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일본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타 문화권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보다 가볍다 -_-

즉, 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원래 쟤네는 무지한 왜구였는데, 백제가 건네준 문화들 받아서 잘도 컸음'이라던가

'쟤네는 남의 것들 잘도 차용해서 얄밉게 포장질 잘 해서 팔아먹고 사는 애들'이라던가,

'쟤네 문화는 참 얄팍하고 자극적이고 상술에만 능해' 등등

(뭐, 위는 상당히 적대적인 경우를 예를 든 거긴 하지만, 다른 나라애들보단 한국애들이 일본을 좀 더 경시하는 경향은 있다ㅎ)

뭐, 이유를 들자면, 똑같이 짱깨문화 영향권에 있어와서 새로울게 없어보이고, 역사적인 설욕-_-도 있고 게다가 일본문화 개방 안하려고 지난 몇십년간 세뇌교육 받은 영향도 있고.. 등등..

암튼 그리하여 일본 하면 좀 얕잡아보는 경향들이 있는데

난 그나마 일본문화에 긍정적인 편이어왔기에

'엄훠~난 앞뒤물불안가려표 민족주의와 파시즘에서 예외로 쳐주렴? ^ㅁ^'

하고 잘난척 해왔던 거시다.

그런데 내가 서양회화사 중 가장 위대하게 치는 인상주의...에

일본문화가 완전 뷁프로 영향을 끼쳐주셨다는 사실을 이렇게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보고는

나 역시 보편 한국인들의 일본 경시 풍조..에서 예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역으로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자포니즘이 19세기 유럽문화에 영향을 끼쳤느니..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아 그냥 동양권에 대한 호기심이 만연했었구나. 뭐 오리엔탈리즘 정도의 시각 아니겠어?'라는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넘어갔던 것.

즉, 닐본 저 깊이없는 것들이 영향을 끼치면 얼마나 끼치겠어...라는 생각이 은연중 내 머릿속에 박혀있었던 거였다고.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마주하고는 부끄럽다.

물론 내가 자라온 환경의 영향상 수많은 편견들이 나를 구성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정면 대치할 때마다 뭔가 부끄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고.

5....p.s

여기는 상관없는 의식의 흐름.

그동안, "문화적 상대주의는 진리"라며

좀 주목 못받는 문화권(아메리칸 인디언, 아프리칸, 아이누족 등)은 유독 더 킹왕짱이라고 추켜세우고,

횽님한테 미움받는 아랍권이라던가는 아름답기 그지없다고 칭송했으면서,

일본문화는 받아들이는 척 하지만 일단 좀 까고 들어갔던 내 머릿속 문화적 "상대주의". (중의적)

어찌 보면 내 성질 깊숙이 박힌 청개구리 마인드

(힘있는 것에 대한 단순반항)의 한 형태일지도.

단순반항은 의미 없다.

크게 보면, 동일한 시스템 내에서 시계추처럼 왔다갔다하고 있는 것에 불과해. 반항 역시 방법은 다르지만, 시스템에 '참여'하고 있는 거라고.

시스템에 대한 반항이 아닌 시스템 초월이 필요하다고.

역시 해탈해야겠군?ㅋㅋㅋ

어쩌면,

사고구조 자체의 변혁이 필요할 지도. 학문하는 방법이라던가 사물을 보는 방식 모두가 근원적으로 변해야할 듯. 뜬금없는 소리지만.

p.s.1 프랑스에 일본 애니 오덕이 유독 많은건 역사적인 거였어?

p.s.2 혹시 인류학이나 고고학쪽에 더 근원적 답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