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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물들/기타 일상 잡것들 리뷰

밀맥주, 이것저것 마셔보니 구관이 명관.

0. 맥주의 이미지

영국에서 맥주(에일)는 노동자의 하루를 위로하는, 삶의 애환이 담긴 술이었다.

뭐, 마치 한국에서의 소주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영국이 문화연구의 발상지인만큼, 영국의 펍문화와 맥주에 관한 연구들이 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도 고리타분한 옛날 책에서 읽은 거니까)

 

 

뭐 그래서 그런지..

맥주 - 서민 / 와인 - 중상류

이러한 이미지가 좀 있던 것 같다.

일단 와인은 칼질용 고기라거나 치즈라던가 하는 좀 손가고 우아한 음식이랑 같이 촛불켜놓고 먹지만,

맥주는 보기만해도 몸에 안 좋은 안주랑 궁합이 짝짝 맞잖아... 닭튀김이나 감자튀김이나 쥐포 노가리 모든 종류의 MSG...

 

 

1. 그래서 나는 맥주>와인

그런 유치한 이유로 어린시절 한 때는 와인을 싫어했다.

아... 사실은 와인도 어느 지역에서는 그냥 아무나 병나발 부는 꽤나 서민적인 술임을 알고는 있었고,

한국에서 유행하기 전 호기심에 싸구려 몇 병 사다마실 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 몇몇 와인은 꽤 맛있게 마셨음에도...

 

한국에 한참 도입될 때 와인갖고 아는척 우아한 척 허세떠는 사람들이 보여서,

고작 와인에 대한 얄팍한(그것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닌) 지식을 갖고 상위계급에 속한 것처럼 구는 사람들에게 본능적 알러지를 느껴버린 까닭에,

괜히 죄 없는 와인에게 미움을 갖게 된 것이다. 뭐 이것은 골프에 대한 이유없는 미움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격도 어쩄든 저렴하고 도수도 낮아서 부담이 없으니만큼, 맥주쪽을 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은 맥주를 좋아하는 입맛으로 굳어졌다... 쿨럭....

(지금은 와인에 대한 미움은 없다 어익후)

 

 

 

 

2. 변하는 맥주 취향

아무튼 새로운 맥주가 나오면 꼭 마셔보면서 맛의 느낌이나 무게 등을 평가해 보는 것이 삶의 낙이자 사치 중의 하나인데,

다행히도 맥주가 아무리 비싸봤자, 만원 넘기는 힘들기에(리테일 가격) 취미생활로는 무리없이 잘 하고 있다.

원래는 상당히 무겁고 구수한 맛의 맥주를 좋아하는 편이었고, (에일류 혹은 기네스나 킬케니 같은 진한 색의 맥주들)

호프의 씁쓸하고 화려한 향은 아주 싫어하는 편이었다. 뭐 알약 녹인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나.

따라서 필스너를 제일 혐오했다.

 

 

그런데,

삶에 대한 철학이 점점 '가볍게 병신같이'...뭐 이렇게 바뀌어서 그런건가,

맥주 취향도 점점 가볍고 산뜻하고 조금은 화려한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직 구수한 계열을 사랑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해서는.)

 

 

 

 

3. 밀맥주

그래서 최근에는 밀맥주가 땡긴다.

앞에서도 말했듯 홉이 많이 들어간 맥주를 매우 싫어했었다. 씁쓸하고, 잘못하면 화장품같은 향이 나기도 했기에.

그런데 요즘 가볍고 산뜻한 맥주를 찾다보니.. 호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 주더라고.

맥주 자체의 맛이 가볍기때문에, 미묘한 향의 역할이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밀맥주를 많이 찾게 됐다.

가볍고 화려하고, 과일껍데기 등의 기타 첨가물을 넣기도 해서 만들다 보니 향이나 맛도 다양하고 해서

자몽이니 오렌지니 고수니 온갖 재료를 넣은 것들을 이것저것 눈에 띄는대로 시음하고 있는데,

 

 

헐.....

의외로 향이 맥주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은은하게 넣는 것이 굉장히 어렵더라고...

뭐 이건 과일탄산인지 맥주인지 헷갈리게 만든 맥주들이 상당히 많더라고....

아니면 맛이 뭐라 말할 수는 없는데 미묘하게 어딘가 모자라는 IQ80 느낌의 술 같거나...

 

 

암튼 그러다 보니,

의외로의외로의외로,

 

 

이것저것 마셔보니 호가든만한게 없네 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머, 옛날에는 호가든을 매우 좋아하긴 했었지만 말이지... 그래도 이렇게까지 미묘하게 훌륭한 술인줄 미처 몰랐는데,

아주 미묘하게 살짝 도는 과일향, 가볍고 산뜻한 느낌의 맛 조절, 그러면서도 맥주 본연의 베이스는 놓치지 않은 매우 훌륭한 맛....

...으로 기억만 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내 추억속의 호가든일수도 있지 -_-. 실제로 마셔보면 다를 수도 있겠지.

왜냐하면 지금은 더이상 호가든을 마실 수 없으니까...

 

 

이 모든 나의 기억은...

 

 

 

물론 오가든이 되기 전의 호가든을 말하는거다.

 

 

 

 

아오... 호가든 내놔라 ㅇㅂ 띱때끼들아

 

 

 

 

p.s. 호가든 하니, 아주 옛날에 정원모양으로 꾸민 술집에서 호가든 생맥주를 마셨던 기억이 난다.

해가 막 져서 어둑어둑할 무렵, 생맥주 한 잔....은 아니고 몇 잔;;;;을 마셨는데,

우리밖에 사람이 없어서, 한산하고 운치있었던 날.

그땐 그냥 별 생각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호가든의 맛과 어둑하고 호젓한 정원, 할일없던 알바생의 이미지가 어우러진 그날의 느낌이

내 마음 속의 어떤 장면과 맞닿아서,

어딘가 신비롭고 그리운 느낌.

 

그러고 보니 호가든이랑은 정서적으로 인연이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