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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월드

백일몽이라고 해야하나.

 

 

난 백일몽이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 전혀 모르지만,

어쨌거나 산책을 하며 느낀 것들이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더 가까운 것 같아 여기에 씀.

 

 

 

* 산책 

해가 지고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은 시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산책을 나갔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그냥 발걸음 가는대로 간 것뿐.

개발이 안 된 지저분한 주택가였다. 원룸이나 하숙집들이 많았고 약간은 어지러운 정리 안 된 길.

 

 

 

** 미로의 놀이동산

빈민가에 가까운 옛스런 좁은 거리를 지나,

구불구불하고 서로 연결되지 않는 복잡한 하숙촌 길에 들어서자,

 

별안간 이 곳은 모두 가짜라는 느낌이 엄습했다.

뭐 이성적으로도 생각해도 당연한 거였지. 수익을 얻기 위해 날림공사로 지은 원룸들이 가득한 곳이니.

그럼에도 그걸로는 어쩐지 설명이 충분치 못했다. 만화 속에 나오는 (음울한) 비밀의 놀이동산, 혹은 가상세계를 걷고 있는 듯한 괴상한 느낌이 엄습하는 것이었다.

 

 

 

*** 종이의 성

그러다 그 미로 속에서 어떤 원룸건물을 마주쳤다.

겉에 쓸데없이 발랄하고 화려한 장식을 달아놓았지만 속이 빈 느낌의 건물로, 마치 종이로 된 인형집을 떠올리게 했고,

이 가짜같은 동네의 중간보스격 정도 돼 보였다.

그런데 이 건물의, 마치 대저택 입구를 본딴 듯한 싸구려 난간장식을 보는 순간

갑자기 어떤 장면들이 다다다다 0.00001초간 겹쳤다.

 

...어떤 장면인지 식별이 안 됐다.

...... 그럼에도 순간 당황스럽게도,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 내 신체반응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

와 본 곳도 아니었고, 건물은 완전히 새것.

내 기억속의 어떤 것을 건드린것 같은데 무엇이었을까.

어릴 때 가지고 놀던 그 무엇? 아니면 언젠가 꿈에서 보았던 장면과 어딘가 비슷해서?

 

 

 

**** 그 후로는 명확하지 않은 이미지들

- 눈 앞에 등장한 갈색뺨의 고양이, 그리고 눈 앞에 나타난, 마치 '무의식 통로'같은 걸 연상시키는 좁은 터널.

- 시큼한 냄새와 동물성 비린내를 풍기는 더럽고 좁은 터널, 그리고 터널의 은은한 황색불빛 아래를 지나가며 받은 괴이한 느낌

- 터널을 지나자마자 눈 앞에 나타난 편의점, 그리고 편의점을 끼고 양옆으로 난 두 갈래 길

- 좁고 낮고 길다란 편의점의 이상한 형태, 그리고 빛나는 편의점 간판과 흐린 회색 하늘과의 기이한 대조,

- 좁은 길을 따라가다 보인 라면집, 그리고 골목의 끝에 갑자기 등장한 대로의 커다란 차소리의 비현실성.

- 이상한 기분에 정처없이 걷다가 어떤 가게에서 나오는 '정신차려~'라는 음악에 퍼득 걸음을 빨리 하기

 

 

***** 기타

처음 가 보는 길이라 공간개념도 없었고, 태양없이 흐린 회색빛 하늘때문에 시간도 알 수 없었기에,

시공간의 개념이 소실된 이상한 세계에 맞닿은 기분.

모든 것이 느리고 몽환적으로 흘러가 버림.

 

아아... 뭐 그냥 꿈을 꾸다가 막 깬 느낌. 사실은 아직도 덜 깬 느낌.

그래서 더 쓰면 쓸수록 글도 더욱 갈피를 못잡게 될 것 같아 여기서 이제 그만.

 

 

 

 

 

 

아까, 모 카페에 보름스의 경이의 방 or wonder-room(wunderkammer) 그림을 올렸더니

마치 그것이 전조라도 되는 듯, 이런 꿈(?)이나 꾸게 되는구나. 정리되지 않은 이상한 것들이 있는, 기억의 방;

 

 

 

 

 

 

 

 

참고로 '분더카머'라는 독일어 단어는 'wonder room'정도의 뜻이라는데, 르네상스때 나온 말. 분류가 되기 이전의 이런저런 물건들을 수집해놓은 백과사전적 공간을 의미하며, 현대 유럽과 북미의 건축물이나 인테리어 등에서도 그 영향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에 대한 하나의 microcosm으로 볼 수 있다고 하는 듯하다.

(위는 확실하지 않은 설명인데, 왜냐하면 설명을 귀찮아서 거의 안 읽음. 혹시 읽으면 나중에 수정해야겠음.)

 

 

박물관과의 연관성은... 글쎄 그건 좀 의견이 분분할 것 같군. 

이미 보기만 해도

* 이성주의 입장_정리되지 않았던 분더카머는 곧 과학적, 시스템적 분류화를 거쳐 박물관으로 진화했다

      vs      

* 비판적 입장_분더카머는 분류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하며 온갖 잡쓰레기도 다 인정받는 알흠다운 공간이다. 즉, 억지 이성 기준으로 일괄 나눈 박물관과는 절대로 다르다

 --> 이 두 갈래가 싸울 것 같다고 추측부터 해 봄. -_-;;;; 물론 찾아보지는 않았습니다.

 

 

 

분더카머라는 이 말 뭔가 간지 돋네ㄷㄷㄷ 독일어는 하나도 모르지만 그냥 게르만족 만쉐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머리가 의식으로 돌아오며 꿈에서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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