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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미요시_(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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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이어지는 글.

미요시에게 몇 번 연락이 왔고 더 복잡한 그 애의 과거 사정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매번 그 애는 그 복잡한 것들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바로 잡으려는 장면에 나를 불러내, 선언하듯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노력할수록 상황은 더 꼬여갔다.
그애는 나에게 많은 걸 보여줬다.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엔 그애를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나는 정말 바쁘기도 했고, 사실은 굳이 내가 나서서 그 애와 만날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다.

그 애와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애는 자신의 과거에 지옥처럼 얽매여 있었다. '다 집어 치우고 그냥 앞만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애는 굳이 그 과거로 돌아가 모든 과오를 바로잡길 원했다. 과오를 바로 잡으려는 끝없는 노력에 묻혀, 미요시는 과거에서 빠져나오질 못했다. 난 더 이상 무슨 말을 나눠야할지, 어떻게 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미요시가 다시 친엄마가 있는 나라로 돌아간 것인지 연락이 끊어졌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카카오톡으로 미요시에게 메시지가 왔다.

"한국 산 모양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지? 비행기 타고 오면서 보면 동그랗고 아담한 모양의 산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어 한국에 왔어? 어떻게 지내?"

"나 산에 자주 다닌다 요즘. 마음이 좀 안정되는 것 같아."

자세한 설명은 없었다. 웬지 두려워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묻지는 않았다. 미요시는 망설이듯 침묵하다가 내게 메시지를 던졌다.

"나 되게 복잡했어. 점집 다니다가 신 받을 뻔했다? 거의 받기 직전까지 갔었어. 내일도 등산 갈거야."

"그래? 누구랑 가? ㅎㅎ"

"같이 가는 몇 아저씨들 있어.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이만 갈께."


그 이후 미요시에게 더이상 연락이 오진 않았다. 아마도 번호를 바꿨을 것이다. 카카오톡 프로필은 중장년 여성이 할 법한 들꽃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 애가 아무리 심경이 바뀌어도 그런 '구린' 이미지를 프로필로 할 리 없으니까. 아마 다시 외국으로 간 게 아닐까 싶었다.


오늘 걷다가 뜬금없이 미요시가 생각났다.
그때 나는 그 애와 더 이상 무슨말을 나눠야할지 모르겠고 더 어떻게 해 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실은,
난 그냥 도망간 거였다.
그애는 아주 커다란 블랙홀 같은 곳에 빠져있는 듯이 느껴졌고, 부여 잡으면 내가 같이 빨려들어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난 그렇게 강하고 현명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나는 그 애를 끌어내 줄 자신도, 마음도 크지 않았다. 나는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았다.

미요시는 친엄마의 나라로 돌아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정말로 신을 받고 무당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것보단 어쩌면
마음이 많이 어그러져서 병원에 갔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서 외면했을 뿐이지만, 그 애에게 분열증상 비슷한 것이 나타나고 있단 점은 눈치채고 있었다.

미요시와 내가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차를 타고 텅 빈 어두운 도로를 달리던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는 노래를 되는 대로 따라 부르며 큰 소리로 웃어댔다. 그때만큼은 그앤 어리고 밝고 천진했고, 아픔은 있었지만 미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애가 누구에게나 경계 없이 달려든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만 특별한 것이 아니므로 그냥 의미를 갖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혹시 어쩌면 그 애가 자기와는 다른 세계에 속한 나에게, 어떤 희망을 갖고 특별히 매달린 것이었을까? 그런 그 애를 내가 그냥 팔짱 끼고 방치한 것일까? 내가 그때 그 애를 억지로라도 붙들어줬다면, 뭔가 바뀌었을까?

막연한 상상 죄책감일 것이다. 오늘은 그냥 마음이 이상한 것뿐이다. 내일이 되면 다시 다 잊고 바쁜 하루를 시작하겠지.
그렇게 감정은 결실 없이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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