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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눈깔

'네 옷 얇아서 추워보여. 뭔가 다른 걸 입어'

물론 나는 춥지 않으며 충분히 두껍게 잘 입고 있었다. 단지 겨울에는 잘 입지 않는 얇은 소재의 옷을 덧대 레이어드를 시도했을 뿐이었다. 어째서 내가 춥지 않은데 '남들이 보기에 추워보인다'는 이유로 다른 옷을 입으라고 권유하는 걸까. 옷의 '계절감'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구나. 눈이 시린걸까. 눈에 털안대라도 대줄까.

길을 가다 딱 붙는 옷이 터질듯한 과체중여자를 보며 지인이 말했다. '저렇게 옷 입는 애들 제일 싫어. 아우 토할거 같아. 게으른 주제에 살 좀 빼지'
내가 말했다. '네 눈이나 쳐 감아.'

자기가 '보기에' 기분이 나쁘다고 예의에 어긋난다고 폄하하는 존나 예민한 뉸깔의 소유자들은 그냥 말도 섞기 싫은 상병신들이다. 웃긴건 이런 상병신의 기분에 맞게 비합리적으로 형성된 다양한 사회적 규범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에게 이 룰은 스페셜리 더욱 적용되기 쉽다. 예를 들어, 어째서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고치면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 되나. 지하철의 경우 옆 사람의 공간을 침범해 방해가 된다고? 다이나믹한 동작이 아니기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가루가 날려서 숨쉬기 힘들다? 가루가 날리는 것은 가루파우더 정도인데 그걸 휴대용으로 사용하는 사람도, 지하철에서 쓰는 사람도 별로 없지. 그럼 왜?

어떤 규범이 있을 때, 그 규범을 감히 어기는게 그냥 도전적이고 꼴보기 싫어서...라는 것 외에 실제로 딱히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이라면 그 규범을 지킬 필요 따위가 있나. (규범이다 법이 아니라) 무엇보다, 어떤 현상이 있을 때 그게 '왜' 존재하는지, 이 상황에서도 적용되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타인에게 뭔가 강요하는 꼴이 토나온다. 특히 '예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많은 행위들에 이런 신물나는 지배행위가 많지.

명절이다.
이런 '예의'와 '배려'로 포장된 지배와 굴종행위를 가득 보겠지.
벌써 신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