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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밀어내기

1. 어른놀이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 특히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나는 대단히 밝고 리더십이 넘치고 사람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실 나는 상황에 맞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는 그 몸으로 때우며 좌충우돌하는 역할을 해야, 함께 한발짝이라도 나아갈 수 있으니까, 경박 오지라퍼가 나타나지 않으면 내가 할 뿐이다. 그 상황이 지나면 나는 역할극을 마치고 원래의 게으르고 무심한 모습으로 돌아간다. '일'이 끝났으니까.

 

 

2. 다가오기

그러나, 때때로 나의 역할극을 진심으로 믿은 사람이 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번의 그는 뭔가 같이 해 보자며 내게 말을 걸었다.

나더러, 사람을 끌어 모으고 네트워킹하는 걸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그 점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을 함께 해 보면 좋을거예요'

 

 

3. 하늘빛꿈

나는 그가 두루뭉실하게 그려내는 그 말도 안 되는 일에 귀를 기울였다.

구체적이진 않았지만 힘이 느껴졌다. 성공이 보이진 않았지만,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투명하고, 풍성했다.

모처럼, 머리와 감각이 아닌 가슴과 직관으로 하는 일을 만났다.

나는 실패할 것이 뻔한 그 일이, 마음에 들었다.

 

 

4. 밀어내기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전 사실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게으르고 폐쇄적인 사람이거든요'

 

 

 

...

미안.

하지만 자칫하면 마음에 들 것 같은 일이어서 역할극은 거부하려고.

 

 

p. 가끔은 오지라퍼가 아닌 딴지메이커가 되기도 한다. 가끔은 눈치없는 병신, 가끔은 콘트롤프리크...

그냥 남들이 안 맡는 역할을 맡으며 균형맞추기를 하는게 내가 하는 짓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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