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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판단하기로 결심했다

판단을 하기로 결심했다.

이게 무슨 ㅄ같은 당연한 소리냐 할 수도 있지만, 내겐 중요한 결정이다.



그동안 판단을 잘 못 했던 것은, 

1) 판단의 당위성에 대한 의심 : 어떤 것을 판단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특정 방향으로 편견을 갖는다는 의미다. 내 성격상 이런 성향이 맞지 않았으며, 판단이라는 것이 특정 행동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전 인류에게 해악이 될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도 했었다. 역사속 현실속 '난 놈'들을 본받고 싶어하지는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2) 판단의 유용성에 대한 의심 : 판단을 통해 결론을 일찌기 내려버림으로써, 정보나 지식을 원천 차단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 좁은 시야를 유발하고 싸움을 유발한다고 보아, 그냥 닥치는대로 케바케로 사물을 보자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제 판단을 하기로 결심까지 하는 것은, 

1) 선입견이 곧 지식이다 : 가장 중요한 이유다. 선입견, 편견, 틀, 이런 식의 딱딱한 단어들이야말로 지식체계의 기본단위다. 어떤 현상들을 하나의 틀로 묶는 작업이 없이는 지식체계가 생성될 수 없다. 


2) 누구나 판단이 없이는 행동할 수 없다 : 행동을 미루고 주춤하기보다는 일단 지르고 후일 되돌아 보는게 여러모로 낫다. 나 자신의 성장에도, 인생관에도, 마음건강에도.


3) 나 한 사람의 선입견따위가 세상을 바꿀 수 없어 : 내가 헛소리해도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 조화, 싸움, 타협 등으로 이뤄지는게 세상이다. 


4) 선입견이라 해도 그게 100이라고 외치는 게 아니다: 당연하고, 케바케라는 점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당케이스라고 해도 그 선입견이 해당 케이스의 100%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입견이라는 단어와 지식은 기본적으로 다르다고? 아, 세세한 건 귀찮고, 어떤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 설명한다는 의미에서는 같다. 단지 그 지식체계를 교과서적으로 해석하고, 주관적이며 독선적인 가치판단이 끼어들었을 때가 문제인 거다(그런 가치판단에 대한 가정을 함께 품은 단어가 선입견이겠지). 




예를 들어, 

아시아인이 유럽인보다 피부 색이 더 노랗다는 것은 어떤 지식이며 판단 기준(에인팊군은 아시아인이구나) 중 하나가 된다.

여기에 대고, '아시아인 중에도 피부가 더 하얀 사람들이 있어'라던가, '그런 관점이야말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반영해'와 같은 대응은, 말 자체로는 모두 타당하다. 


그렇지만, 집단이나 사회현상 등에 대한 경향성을 판별하는 것이, 

1)'가'라는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모두 '가'의 대표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가'의 속성'만'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자는 것은 아니며, 

2) 그것이 사회에서 차별기준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점을 의미하진 않는다. 


1-A) '아시아인이 피부가 노랗다'라는 선언을 교과서적으로 받아들여 '사람을 같은 틀로 재단한다'고 함부로 선언하는 단순함이 문제인 것이며, '아시아인은 모두 다 피부가 노랗진 않잖아'라고 피곤한 해석을 하는 딱딱함이 문제인 것이다. 


2-A) 또한 '노란 피부'에 인종적 차별 가치를 부여해 '차별하지 말라'고 외치는 것도 딱히 건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 물론 사회에서는 어떤 가치판단이 개입되게 마련이긴 해. 그래도 그건 사회의 문제이지, '내 피부는 노란피부다'라는 선언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잖아. '노란 피부'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 가치를 고치려고 해야지, '아시아인이 다 노랗지 않아'라고 지식을 부정하려 하는 것은 접근이 잘못됐다는 거다.


아아 그러니까, 지식 자체(in ideal world)는 중립적이며, 효율적으로 수많은 것들을 하나로 묶어 어떤 경향성을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그것을 해석하고 이용하는 인간종자들이 못난 것이다. 아, 물론 정치적(광의의 개념)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해. 그것을 조심하는 현실적인 태도도 물론 이해해. 하지만 그런 식으론, 어떤 것도 정치적 이용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거야. 지식 자체의 선언을 함부로 가치편견의 발로라고 보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거야.



예를 들어, '아메리카 흑인은 백인보다 교육수준이 떨어진다'는 발언을 했을 때, 이것을 '흑인이 못났넹'이라고 하는 인간이 병신인 것이고 '그딴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다니, 흑인도 충분히 똑똑해'라는 발언도 엄청 확대해석인 것이다.








어머 칸트선생님 'ㅅ'

당연한 말을 되게 길게 써놓았구마. 하지만 뭐 당연하지 않은 것은 그닥 없고, 어떤식으로 표현하냐에 따라 달라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