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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외마디

내가 필요한 것

세상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분노하고 안타까워하다보면, 

일도양단내려는 그 극단적인 정서에

여유없고 빡빡함에 갑갑하고 화가나다가도 슬퍼진다.




사실 어릴때부터 

나같이 서투르고, 미숙하고, 아등바등 경쟁이 싫고, 미움받기도 싫고, 게으르고

항상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타고난 잉여는 결국 도태되기 쉽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냥 도태된 사람들 사이에서 도태되며 즐겁게 퇴폐적 쾌락주의로 살고 싶었는데, 날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는 환경이 있었지.





어른이 되면 나도 능숙한 척 하는, 아니면 정말로 능숙한 인간이 돼야 할텐데 

도저히 그렇게 되지 못할 것 같고, 그 역할을 해내기에도 자신이 없고 너무 무서웠어.

얼마간의 시간을 온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날려버렸어. 

물론 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남들의 시선에서지만.

그땐 한 구석에 쳐박혀 닥치는대로 나에게 해답을 던져줄 것 같은 이것저것을 찾아헤맸다.

답을 찾지 못헀기에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서 의견이 없는 바보같은 애로 비쳐졌고

주변 사람들은 내게 뭐하는 짓이냐고, 넌 왜 하는 것도 없이 그모양이냐고, 애가 왜이리 띨띨하냐고 화를 냈지.

무심코 한 번인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가, 그냥 비아냥과 함께 미친 인간 취급을 당했지.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들과 나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 진심이 통할거라는 말은, 협상테이블에서나 적용되는 전략적인 것이지, 근본적인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

그들은 자신이 납득하는 이유인 'cost-benefit'관계 외에는 어차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는 것.





그때부터, 

내 안의 언어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를 숙어 외듯 익혔고 

되는대로 그 화법을 뱉어냈다.

'그딴 모임 왜 나가'라는 질문에 '여기엔 이런류의 사람들이 와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마음 없는 공허한 소리를 내뱉었을 때, 

그들이 처음으로 내 말에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고

'이렇게 살면 되는구나' 하는 해법 발견에 기뻤고, 씁쓸했다.




사실은 지금도, 

매크로 돌리듯이 이것저것을 해내며 익숙한 말들을 내뱉고 있지만, 

내 안의 세상은 죽지 않은 채 그대로, 더욱 왕성하게 뿌릴 내리고 숲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항상 혼자일 때, 

하늘이나 나무냄새를 맡을 때, 

바람이 전해주는 떨림을 느낄 때마다

내 안의 세상으로 잠깐씩 웅크린다.




그런 잠깐의 순간들이 있어서 

내가 계속 버틸 수 있는 거겠지. 





버틴다는 표현을 쓰지만, 

진심으로, 그런 순간들을 경험할 때마다 

나라는 필터를 거쳐, 지구와 우주에 대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심이 밀려온다.

그런 커다란 한 순간들이 있어서, 

계속 '살아있고 싶다. 살아있는 것에는 진정 가치가 있다'는 강한 느낌을 충전받게 되는 것이다. 



뭐 죽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왜 살아야 하는지는 답이 없으니까.

사실 그런 강렬한 느낌이 아니라면, 

굳이 살아있는 것에 의미를 찾기 힘들기도 하고, 




암튼 그런 의미에서 

혼자 오롯이 한 달 정도 떠돌다 올 수 있는

충전의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그냥 혼자 떠돌다가 

마음맞는 사람이 나타나면 반나절 이야기를 나누고, 

손을 흔들고, 다음을 기약하지만 다음은 나타나지 않고

다시 혼자 생각에 잠기는

그런 긴 시간을 가지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