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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월드

검은 기본적으로 슬픔이라고

*

그녀가 말했다.

'에이스든 뭐든 검은 기본적으로 슬픔, 갈등이잖아.'

 

아차, 그런 것인가 싶었다. 결국 그런 거지. 그래, 내가 너무 희망적이었던 거지. 현실을 잊고 있던 게야.

 

그리고 바닥에 뻑뻑하게 갈린 토마토가 가라앉아 있는 '토마토 맥주 칵테일'을 건네주었다.

숙취에도 좋고 맛도 좋을 것이라고. 약간 토사물같은 느낌이었지만 받아 마셨는데,

응? 그런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네?

마치 블루문비어처럼 거르지 않은 곡식과 과일껍데기의 거친 신선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

여행 책자의 앞 반은 베트남, 뒤 반은 필리핀이었다.

베트남 부분은 도시여행과 모험, 문화에 관한 이야기, 필리핀 페이지는 온통 파란 바다 투성이였다. 아 시안색 잉크 많이 썼겠네.

물론 뒷부분 필리핀 페이지에는 관심 없었다. 수빅지역 페이지를 펴니 갈만한 곳으로 어떤 워터파크를 소개하고 있었다. 옥빛 바다를 손으로 짚는 순간 눈 앞에 커다란 외국인 전용 워터파크가 펼쳐졌다.

'그러니까, 기껏 비행기표 사서 비싼 돈 들여 여행을 가서 에버랜드같은 곳을 가라는 거지?'

분명 어이없다는 의미로 말했지만,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뭐, 역시 그렇군 싶었다. 하루이틀이야.

***

필리핀의 어느 호텔 방, 모두 놀러 나가고 할머니와 나, 둘뿐이다. 할머니는 나에게 맥주를 권했다. 나눠 마시자고.

'괜찮아요. 술 마시고 싶지 않아요'

맥주를 나누어 마시는 친근함을 할머니에게 느끼기엔 어쩐지 어색했고, 딱히 친근해지고 싶지도 않았다. 할머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민망함을 감추기 위한 듯 건너편 암체어에 가서 앉았다. 페이즐리 문양에 공단과 울로 짜여진 바로크 양식의 의자였다. 당신다운 의자 선택이야. 육체에 힘은 없어져도 여전히 권위만큼은 잃지 않고 있는 모습에, 소위 패륜에 대한 죄책감을 덜 수 있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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