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생각외마디

합천해인사

부속품으로 착착 움직여오던 어느날,

내 옆동네 부속품 12호는 갑자기 고장을 일으켜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공장 휴업이다.


무턱대고 걷다가 절에서 우연히 만난 검은 피부의 중년은, 

채식주의자이고 뉴햄프셔에서 살며 역사를 공부하며, 한국의 절을 구경하러 왔단다.

합천해인사에 다녀왔다는 그 사람에게 무미건조하게 그 먼델 용케도 다녀왔네.. 하고 내뱉자, 그의 잿빛 눈썹이 움찔했다.

'어떻게 그 아름다운 곳을 안 가 봤을 수 있지?'



다시 걸었다.

내가 알던 옛동네는, 지나친 치장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갖고 있던 아름다움을 잃었다. 

상점과, 공장휴업을 맞아 소비로 기름칠하고 '힐링'하려는 부속품들이 맞부딪쳐 굉음을 낸다.


세련된 간판, 작은 폰트로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는 모던한 건물들이 

크고 거친 옛날식 궁서체 간판과 '상회'들을 몰아냈다.



서울에, 합천 해인사와 같은 곳은 남아있을 수 없다.

그냥, 나의 현실이 아닌 거야. 뉴햄프셔아저씨.

'잡생각외마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피가금지된삶  (0) 2013.10.30
방랑벽  (2) 2013.10.18
일련의 꿈들이 내게 암시하는 것들  (2) 2013.09.23
다른 intp의 한마디  (10) 2013.08.17
장화신은 고양이 케이블 방영  (0) 201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