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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어느 늙은이의 ADHD 진단기다.
0. 내 상태
나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고 직장도 대충 다녔고 일도 대충은 하고 있다. 누구도 나를 ADHD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ADHD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나는 혹시 내가 이 카테고리에 속할지 궁금해졌다.
내가 ADHD 검사를 받겠다고 얘기하자 주변 인간들은 아연실색했다.
자기가 보기엔 그냥 네가 성격이 이상한 거지, ADHD같진 않다고. 그리고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면 앞으로도 그대로 살라고.
그러나, 나는 앞으로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든 말든 나의 상태가 궁금했음. 물론 삶이 더 나아진다면 좋고.
뭐랄까, 내가 항상 무기력하고 누워만 있고 머릿속으로 지구 100바퀴를 헤매는 것이 ADHD탓이라면,
앞으로 개선 여지가 있을테니 희망이 보이잖아.
그래서 모 병원에 전화해서 검사 예약을 잡았다.
1. ADHD 검사
참고로 나는 의심충이라서 한큐에 나를 납득시킬 여러 검사를 다 해야한다.
그래서 EEG(소위 뇌파검사)와 CAT(주의력 테스트)를 둘 다 받았음.
가격은 20만 원 내외였던 것 같음.
혹시라도 병원 어디였냐 이런거 묻지 말 것. 절대 안 가르쳐 줄 것임ㅋ.
어차피 무슨 병원에서 특허낸 것 아니니까 저런거 해 주는 병원 아무데나 가면 됨.
먼저 본격 ADHD 검사를 하기 전에 간단히 우울증 척도 검사와 불안 척도 검사를 함. 둘 다 지필검사라서 대충 했음.
ADHD로 인한 무기력/주의력결핍과 우울 혹은 번아웃으로 인한 무기력/주의력결핍은 사실 양상이 좀 다르다고 들었음. 어떻게 다른지는 모르고 그냥 떠도는 얘기.
그렇지만 여튼 공통적으로 집중 안 되고 무기력하다는 건 비슷하기 때문에, 다른 원인으로 집중 안 되는게 아닌지 체크하기 위해 간단히 저런걸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격 검사 ㄱㄱ
EEG검사는, 머리에 젤을 잔뜩 바르고 전선이 어마어마하게 연결된 그물 모자를 머리에 쓰고 진행한다.
출처: https://mehtahospital.com/index.php/gallery-item/eeg/
머리에 저거 헬보이처럼 꽂는게 아니고 그냥 구식 파마용 그물모자 같은데 저 전선들이 달려있음.
머리에 젤 잔뜩 바르고 그 모자 쓰면 됨. 통증 이런거 당연히 하나도 없음.
전선이 컴퓨터에 연결돼 있는데, 대충 세 보니 32개 채널 아니면 36개 채널인거 같음. 그 채널이 다 쓰였는지는 모름ㅋ.
여튼 저 모자 쓴 채로 눈 감고 5분간 명상하듯 앉아있되, 움직이면 안 되고 졸면 안 된다고 함. 그걸 두 번 해서 10분만에 검사 끝남.
그걸로 각 뇌 부위의 뇌파 사진을 찍는 것이라고 한다.
그 다음엔 CAT 검사라는 것을 했다. 주의력 테스트인데 그냥 간단한 두뇌퀴즈같은 느낌이다.
도형 몇 가지가 휙휙 지나가고, 그 중에 특정 도형이 나오면 버튼을 누르라는 게임, 똑같은 도형이 나오는데 매번 버튼 누르다가 특정 도형 나올 때는 누르지 말라는 게임, 특정 소리가 들리면 버튼 누르는 게임, 특정 소리와 도형이 함께 제시되고, 그 중 하나가 다음에 등장하면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게임, 작업기억테스트(카드 뒤집고 그 뒤집힌 순서 맞추는거)
뭐 그런 게임들이 나오는데...
ㅋ졸래 별 거 아닌거 같지?
각 게임들이 10분동안 지속됨.
하다가 지겨워서 미침. 속으로 막 비명이 나옴ㅋ
저게 안 지겹고 할만하면 절대로 ADHD가 아닐 거 같음
그리고 내가 좀 약한 영역이 분명히 느껴짐. 머리는 알겠는데 손이 제어가 안 되는 포인트가 옴. 그래서 검사 하다 말고 '아 나는 ADHD구나'라는 것을 자각하고 쓸쓸하게 집으로 돌아가게 됨.
여튼 저거 다 하고 나면 약 2시간 정도 걸리고, 검사 결과를 기다리면 됩니다.
2. 검사 결과
당일 바로 결과가 안 나오고, 시간을 따로 잡아 결과를 들으러 갔다.
검사 결과....
ADHD가 맞다고 함
의사가 힘드셨겠네요, 라고 함.
사실 나는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서 약간 응?! 스러웠음.
내 전두엽 사진을 보니, 깨어있을 때도 깊은 잠을 잘 때 나오는 뇌파가 나오고 있음ㅋㅋㅋ.
전두엽은 사물을 조직하거나, 충동을 자제하거나, 정해진 룰을 지키는 영역과 관계가 있어서, 이 전두엽이 주무시면 생활이 잘 조직이 안 되고 룰을 잘 못 지키게 된다고 함. 이게 ADHD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하더라고.
그리고 후두부에서 베타파가 조금 높게 몰려있음. 아주 예민하거나 불안증이 있는 경우인 것 같다더라고. 그냥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 같더라. 전체적으로 베타파가 다른 사람보다 높진 않았음 (베타파도 다른 사람보다 아주 조금 낮은 편)
CAT 결과는 의외로 내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 영역이 비정상으로 나오고, 조졌다고 생각한 영역이 정상으로 나왔음.
보니까 많이 맞추고의 문제보다도 응답의 질 자체도 측정하는 것 같더라. 응답속도라던가(예를 들어 문제 나오기 전에 응답하는 경우..).
의사는 심하다 안 심하다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내가 보니까 별로 심하진 않은 것 같음.
3. 콘서타 후기
의사는 나한테 약을 먹을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나: "아니, 누구나 다 먹는거 아닌가요? 약을 안 먹고 치료가 되나요?"
의사: "약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게 아니고 효과 없는 사람도 상당수며, 부작용으로 고생하다 안 먹는 사람도 많아요"
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궁금해서 약을 처방받았는데, 이름이 콘서타라고 함. 전두엽에서 도파민 재흡수를 막아주는 각성제라고 하는데, 나는 가장 적은 용량을 처방 받았음 (18mg)
원래 각종 약에 부작용을 많이 겪는 타입이라서,
솔직히ㅋ이게ㅋ 뭐ㅋ 효과가ㅋ 얼마나ㅋ 되겠어?ㅋ라고 생각하고 약을 받아왔는데...
헐 이게 뭐야
출처: https://images.app.goo.gl/WggH93T5f7UVXeP47
아니,
평소에 내가 살던 세상과 전혀 달랐다.
내 머릿속이 평소에 그렇게 복잡하고 중구난방이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약을 먹고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눈 앞의 나무가 또렷하게 보이더라.
머리와 마음이 아주 조용했다.
공기가 아주 청명하고 쾌적한 곳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걷는 느낌이 들었다.
평생 몇 번 안 되는 드문 순간의 느낌이 집에서 찾아올 줄 몰랐어.
그리고 평소에 거슬리던 여러 소리들이 훨씬 덜 거슬렸다.
소리는 똑같이 들리는데 이게 이상하게 조금 뭉툭하고 부드러워진 느낌이었음.
그리고 세상의 각종 감각들이 덜 거슬리다 보니까, 훨씬 덜 피곤했고, 단순한 작업들을 할 때도 피로도가 덜 했다.
평소에는 하나의 작업을 할 때, 거미줄처럼 이것은? 저것은? 요것도? 하고 가지치기 잡생각들이 마구 떠올라서 동시에 허겁지겁 헤집는 경우가 많았거든.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안 되고 머릿속으로 이미 지쳐서 그냥 누워있게 되고.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나도 단순하게 하던 일을 하게 되더라고.
그리고 평소에 내가 하기 싫어하던 일들을 해도
지치지 않았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눈물이 나더라 ㅋ
내가 이렇게 힘들게 발버둥치면서 살았다는 것이 억울해서.
4. 기타
근데 함정이 있음.
콘서타 먹은 첫날만 그런 느낌이 들었고, 다시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임ㅋ
병원에 얘기했더니, 원래 첫번째 먹을 때는 다 그렇게 신세계라고 함. 그건 그때 한 번 뿐이라고 합니다.
또 하나의 함정은,
약 먹을 시간대를 애매하게 놓쳐서 사실 약을 거의 안 먹어 봤기 때문에 단언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움ㅋㅋㅋ
계속 먹을지 안 먹을지 모르지만(자꾸 먹는 시간대를 놓치고 커피를 못마시게 하는데 커피가 너무 그리워서 약보다 커피를 선택하고 싶다)
여하튼 첫 날 내가 약을 먹었을 때의 느낌이 보통 사람들의 느낌이라면,
진짜 나는 대견하게 발버둥치면서 잘도 살아온 것 같아서 스스로가 기특한 것 같다.
병원 빼고 궁금한 것 / 혹은 자신의 경험이나 조언 등등 지나가다 댓글 달아주세요.
끝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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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작용: 보통은 밥맛이 없다는데 그런거 전혀 없고 밥 잘 쳐드심ㅋ. 대신에 처음 먹을 때 머리를 뭐가 관통하는 느낌, 심장 빨리 뛰는 느낌, 가슴이 답답한 느낌, 눈 따가운 느낌, 팔저리는 느낌 등이 한번씩 가볍게 있었는데, 사실 뭐 엄청 불편한 건 아니라서 이 정도면 크게 부작용 있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의사한테 말하니까 '네가 먹는 용량이 개 최소 용량이라 웬만하면 부작용이 나타날 용량은 아님. 근데 너는 다른 사람보다 개민감한 편이구나. 그냥 일단 적응될 때까지 그 용량 그대로 올리지 말고 먹으렴'이라고 함. 현재 큰 효과는 없어도 일단 꾸준히 약을 먹어서 몸에 적응이 되어야지 용량을 올리든 말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계속 부작용이 나타나면 다른 약으로 바꿀 수 있는데, 아마도 페니드라고 불리는 3시간짜리 약을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런데 내가 그냥 딱히 안 바꾸겠다고 해서 일단은 콘서타 18mg으로 유지중.
근데 솔직히 약이 뭐 영양제도 아니고 치료가 되는 것도 아닌 이상 꾸준히 먹고싶지 않은 기분이 들고 있음. 이건 또 근거를 찾아봐야지...
+ 효과: 첫날 병신같은 잡일을 스트레스 없이 했음. 그 다음 며칠은 평소보다 약간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 같음. 그리고 더 지나니까 딱히 체감되는 효과 없음 ㅋㅋㅋ 체감되는 효과가 없다고 해도, 나는 몸의 상쾌함이 더 소중하기 때문에 약 용량을 무리해서 늘리고 싶은 생각이 없음.
지금은 콘서타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셔야 뇌의 각성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은 느낌임. 아 근데 원래 커피 마시면 각성을 했기 때문에 이게 무엇으로 인한 효과인지 상당히 애매하긴 함.
문제는, 콘서타 먹은 날은 커피 x 콘서타 효과로 잠 졸라 못잠. 콘서타가 12시간 -14시간 간다는데, 나는 뭐 18시간은 가는 것 같음. 집중력 향상 말고, 잠 안 오는 것만.
여하튼 잠만 못잠....ㅅㅂ
+ 먹다 끊으면: 계속 하루 건너 하루 약을 드문드문 먹었는데, 그러다 연 이틀 안 먹었더니 미친듯이 잤음. 원래 잘 자긴 하지만 이건 수면제 먹은 것처럼 그냥 자게 되더라고. 뭐 근데 이거 너무 일천한 경험이라 더 체험해 봐야지.
여하튼 약은 보조고, 이 약기운을 이용해 나의 생활습관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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