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각과 후각이 완전 일빠인 어떤 ADHD-INTP의 커피 추억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의사가 당분간 커피를 마시지 말랬는데 ㅅㅂ잠도 안 와서다.

하루만 더 ADHD약을 먹고 커피 안 마시고 살아볼 것이다. 그래도 잠이 안 오면 

며칠간 자율적으로 약을 포기하고 커피를 마셔야겠어.ㅋ



0.

우주의 기운 같은 소린데, 커피는 원두를 볶는 정도/방법/사람/도구뿐 아니라 지역에 따라 맛이 매우 달라진다.

커피를 만드는 장소의 공기와 물, 분위기, 재료 등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볶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겠지.

그리고 지역별로 어울리는 원두 특성도 다르다. 원두의 특성과 더불어 이런 제반 조건들을 모두 잘 이해하는 사람이 커피장인이다.

물론 이건 그냥 내 미뢰에 근거한 소리다.


1. 

나는 미디엄-다크 로스팅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다크가 어울리는 원두도 있지만, 대체로 내가 목격한 미디엄-다크 로스팅 원두는 원래 원두가 가지고 있는 고유 향을 거의 죽여버렸다. 존나 불타서 발악하는 것 같은 지옥의 맛이 남아있다. 딱 야근의 쓴맛, 헬센로스팅이다. 

보통 어디 커피가 맛있다고 해서 가 보면, 미디엄 혹은 다크 로스팅이 많다. 그리고 "저희는 부드럽게 라이트 미디엄으로 볶았어요"라고 함. 까셈. 이젠 아예 안 물어본다.

가끔 라이트 로스팅이라고 해서 맛을 보면 꼭 ㅈ같이 이상하게 볶아서 원래 가지고 있는 산미 향 이런게 다 죽었음ㅋ 아니면 이상하게 강해져서 식초같이 신맛 남. 밸런스를 모르고 그냥 무조건 빡쎄게!!! 강조해놨음.

그래도 사람이 존나 많은 걸 보면 막 빡이 친다. 

아 아니지. 생각해보니, 헬센로스팅은 진정 지역을 잘 이해한 로스팅이짘ㅋㅋㅋㅋ


2.

내가 좋아하는 커피 원두는 사실 거의 큐슈 지역에 있다.

나는 커피 허세가 심해서 원두를 산다는 핑계로 항상 일본에 갔었다.

커피 유통기한은 대충 한달 정도였기 때문에ㅋ 거의 한 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은 갔어야 했지...ㅋㅋㅋ

뭐, 예전에도 썼지만 국내여행 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다니고 있었으니까 부담이 되진 않았다.


어차피 당분간 가지 못할 것 같으니까, 좋아하는 원두를 풀어보며 그리움을 달래야지.


3. 

일본 후쿠오카

사실 커피는 굉장히 지역에 따라 달라지고 달라야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원두의 맛은 큐슈 지역에서 볶은 맛이다 -_- 그 중에서도 후쿠오카가 최강이지. 일단 후쿠오카는 축복받은 도시다. 모 아로마 회사가 묘사한 후쿠오카의 이미지는 녹나무와 각종 허브, 약간의 오렌지 향기가 날리는 치유의 장소다. 내가 느끼는 후쿠오카와 거의 똑같아서 굉장히 놀랐다. 그 아로마 회사가 만든 후쿠오카 이미지 향을 처음 맡았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여유롭고 섬세하며 물이 부드러운 곳은 커피도 부드럽고 섬세하며 향기롭다.

물론 이 원두를 현지에서 먹을 떄와 집에 가져와서 먹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름ㅋ 그래도 여전히 매우 부드럽다.


아래는 그리운 원두들이다.


마누커피: 후쿠오카 여기저기에 지점이 있다. 새벽 2시까지 하는 하루요시 지점에 자주 갔는데, 밤에 동네 사람들 다 나와서 커피 마시며 떠들고 있고 음악 존나 큼. 전부 분위기는 좀 허름한 듯, 빈티지한 듯 힙하다. 여긴 라이트 로스트는 아닌데 이상하게 부드럽다. 쿠지라 블렌드를 자주 사오게 되는데 딱히 이유가 있는게 아니고 고래가 귀여워서.

REC커피: 전반적으로 신맛이 강하다. 온두라스가 부드럽고 괜찮음. 그리고 여기 게이샤원두 비싸지만 최강이다. 게이샤 원두는 미친듯이 비싼 원두 품종이고 한정된 계절에만 나온다. 정말 섬세한 커피라서 잘 내려야 한다. 꽃향기로 황홀해지는 맛이다. 한국의 게이샤 원두 몇 번 맛을 봤는데 그 비싼 원두를 존나 훼손했다. ㅂㄷㅂㄷ 특히 스타벅스리저브...제발 게이샤원두에 손도 대지 마라. 비싼 원두를 진짜 핵병신 만들어놔서 너무너무 빡쳤음. REC커피는 보통 야쿠인에 많이 가는데, 후쿠오카 현청 인근에 있는 지점이 조용하고 분위기 최강이다. 물론 관광객이 거기까지 쳐 기어갈 일이 별로 없긴 하겠지만. 최악의 지점은 하카타역에 있는 건데, 그래도 그 인근 커피숍 중에선 제일 나음.

토카도커피: 후쿠오카에서 좀 고급 중년들이 가는 몰인 하카타리버레인에 입점했다. 본점은 시내에서 멀기 때문에 안 가봤다. 인기 있는 원두는 아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원두는 하카타 우마카 블렌드. 아주 최소한만 볶은 엑스트라 라이트 원두라서 보통의 커피와 달리 차를 마시는 느낌이다. 약간 버터리?하고 부드러운데 카페인의 기운은 느껴진다. 다른 원두보다 이 원두가 특히나 귀한게, 후쿠오카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이고 이 정도 엑스트라라이트로 볶으면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가게들이 거의 없다. 어마어마한 기술력이다.

https://tokado-coffee.shop-pro.jp/

ㄴ (당연하겠지만 이 아저씨 커피 진짜 잘 내린다. 접객도 어마어마하게 제대로다. 근데 많이 젊게 나왔네. 아니면 딴 사람인가?)


스타벅스 리저브 하카타 우체국 건물: 위에서 스타벅스 리저브의 게이샤 원두한테 ㅆ욕을 했는데, 그건 한국의 종로1가 국세청건물에서 마신 것이었다. 똑같은 스타벅스 게이샤 원두를 후쿠오카의 하카타 우체국 건물에 입점한 스타벅스리저브에서 마셨는데 (참고로 관광객이 여기까지는 많이 오진 않아서 하카타 인근에선 "그나마" 가장 조용한 스벅이다) 일단 준비 시간이 거의 20-30분 가까이 걸렸음ㅋ 왜케 오래걸리나 했는데, 가져다준 커피가, 헬센 종로1가 스벅과 완전 다른 개체다. 헬센 리저브 게이샤는 헬지옥의 불악마 스트레스로 지져서 흑화된 강렬한 쉰맛!!씨발내가꽃향기야!! 뭐 이지랄이었는데, 여기서 내려준 게이샤가 너무 훌륭하고 부드러웠음. 똑같은 원두일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원두는 한국이랑 똑같을 것이기에 안 사옴. 


다른 유명한/현지에서는 좋았던 곳들 몇 군데 있는데 집에 원두를 사 갖고 왔을 때 일정 품질이 보장 안 되는 경우들이 있어서 생략. 원두를 사가지고 오기엔 젊고 트렌디한 곳들이 대체로 더 신맛을 강조하고 좋았음(개인 취향). 전통 있는 곳들은 향보다는 무던하게 깊고 은은한 느낌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던 느낌이다. 앉아서 먹기에는 전통 있는 오래된 곳이 더 좋다(근데 이런덴 꼭 흡연이 허용돼 있음)


일본 미야자키현

사실 내 최애커피는 여기 있다. 이름은 쓰다 지웠다. 씨발 여기가서 외국인 만나면 그냥 무조건 나다. 그냥 로컬 동네 외딴 곳 구석에 쳐박힌 데고, 나도 진짜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인생에 커피 빼고는 친구가 없을 것 같은 오덕같은 아저씨가 커피를 볶는다. 그 지역 아줌마가 커피 사러 존나 멀리서부터 와서 말 걸어도 단답형일 정도로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데 이게 진짜 커피 장인이구나 싶다. 내가 커피 사러 근시일내에ㅋ 다시 방문하자 아저씨가 어이 없어 했는데, 당시 비행기값(왕복 약 7-8만원)을 듣고는 매우 납득하고 놀라워했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우울하군.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맛이다.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고 향이 그대로 살아 있다. 미야자키가 워낙 깨끗해서 그런 맛이 날 수밖에 없다. 시골은 환경이 좋은 대신, 최신 트렌드 교육을 받은 세련된 커피장인이 많지 않아 섬세함 구현을 잘 못하기 쉬운데, 여긴 최고였다. 이 곳 원두를 전달받은 친구가 (원래 커피 안 마시는 인간) 너무 충격받아서 보지도 못한 아저씨에게 사랑에 빠졌다. 충격적이어서 납치할 뻔했다.

그런데 최근 주인니뮤께서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더니 먹고사니즘에 사회성이 좋아지더니만 맛이 변질됐다. 시골 동네 사람들하고 인사 겁나 싹싹하게 하고 수다도 떤다. 섬세함은 좀 떨어졌지만 여전히 그리운 곳이다. 일본 뚫리면 바로 가서 커피 사오고 싶다.


나머진 귀찮아서 생략하겠다.

참고로 고베 지역 커피도 매우 부드럽고 맛있다. 고베도 후쿠오카랑 느낌이 비슷해서 강하지 않고 부드러운 맛이 나는데 후쿠오카가 고베보다는 좀 더 가볍고 산뜻하다. 고베 커피는 균형이 잘 잡힌 우아한 맛이 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선물로 다른 사람에게 커피 원두를 준다면 고베 커피를 택할 것 같다. 

도쿄는 엄청난 각축장인데 개성과 기본 품질은 보장되지만 역시 대체로 세기말적 대도시의 스트레스 맛이 좀 있다ㅋ. 물론 편견이다.

홋카이도 커피는 평균적인 한국인이 좋아할 것 같은 맛이다. 춥고 좀 거친 느낌이 나는 지역이라 산미나 향을 중시하기보단 강한 로스팅에 구수한 맛, 숯불을 사용한 것들이 많았음. 현지에서 마실 때는 다 납득이 가고 좋았는데 한국에 가져오니 그냥 그랬다.



Posted by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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