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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라캉 계보의 사람들을 해설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원전을 읽는건 아니고, 그 원전을 쉽게 소개한 책이다.

철학, 특히 유럽 철학 쪽에 그다지 친밀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 것들을 접할 때 내 마음은, '그래서 어쩌라고' 였다.

사람의 밑바닥을 파헤치면 나에게 뭐가 더 나은거야. 거기 빠져 있는 것조차도 그냥 게으르기 위한 핑계 아닐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랑 별로 안 친했던 것 같다. 뭔가 너무 진지해서 농담은 못 받아들이는 인간들이 하필 주로 저런 이야기를 해서.

그런 나도 나이가 들고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좀 달라졌다.

 

1.

살다 보면, 종종 공허함이 거대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냥 바쁜 척 하는 일상 뒤에 무시무시하게 커다란 빈 이질적 공간이 잔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무력감 우울함 이런 표현가능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숨막힐 정도로 거대하고 아무것도 없는. 어떤 말로 표현하기 애매한 느낌.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이라는 전시에서 이것을 잘 표현하고 있다.

마치 이런 것.

뭐라 표현하기 힘든 이 이질적 모호함을 통해 인간은 본능적인 불안함을 느낀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여러 극단주의 영화들이 죽음과 공의 영역에 닿으려 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마터스 같은 영화.

 

2.

라캉은 이것을 실재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여러 질서(언어 포함)를 상징계라고 한다면, 그것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본능적 성과 죽음의 영역이 실재인 것이다.

무한 혹은 공허와 마그마의 영역.

인간은 여기서 어떻게든 질서(상징계)를 만들어 내 살아가고 있지만, 기저에 있는 실재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 질서를 뚫고 나오는 무질서의 흔적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다.

 

3.

실재를 마주하는 찰나, 문명화된 사람들은 불안해한다.

그 불안함을 덮고 질서를 유지하며 살아가기를 택한다. 그리고 사회가 그것을 권장한다.

당신은 이런 상황이기에 무기력한 것입니다.
당신은 이렇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내가 원인을 말해줄께요. 그리고 해결책도 말씀드리죠.
이런 운동을 하시면 됩니다. 이런 약을 드시면 됩니다. 이런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모든 것이 통제 가능하며 손에 잡힐 것처럼 이야기한다. 

기저의 무질서와 공허를 마주하지 않으려 한다.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있다.

 

4. 

나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게 생산적이고 건실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실재나 공허를 마주하는 것이 뭔가 핑계처럼 느껴졌었다. 그냥 열심히 살기 싫어서 도피하는 것처럼.

그렇지만 있는 것을 없는 것처럼 애써 시선을 돌려가며 사는 것이야말로 도피 아닐까.

물론 실재는 닿을 수는 없는 영역이다.

나는 어떻게 통합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일단은 더 읽어나가야겠다.

 

p.s. 제목에서 마지막 글자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빠졌다.

그런데 그냥 모호한 상태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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