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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우주의 한 점

land 2025. 4. 20. 22:56

밤 공기가 훈훈했어.

너와 나는 창문을 열고 달렸어.

네가 뭐라고 말했어.

나도 뭐라고 말했어.

둘 다 바람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둘다 그냥 목청껏 소리질렀어.

내용은 하나도 상관 없으니까.

밤은 아름다워. 

밤은 무엇이든 품어줘.

밤은 시간을 벗어나.

아름다운 밤은 그저 무르익는 것처럼 보였어.

그냥 그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질 것 같았어.

그러다 갑자기 팟! 사방이 밝아졌어.

더이상 밤은 없어.

차갑고 선명한 낮이야.

 

 

너는 잔뜩 굳은 얼굴로 누워 있었어.

눈이 감겨서 보이지 않아.

편안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도 찡그린 네 표정을 편하게 만들 수 없어.

고통이 보였어.

빗방울이 떨어졌어.

빗방울은 차가웠겠지.

느껴지지 않았어.

 

 

오늘 아프면 푹 자고 내일 일어나자. 

오늘 괴로우면 내일은 나아질 거야.

오늘 싸우면 내일 화해하면 돼.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

왜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일이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어떤 환상을 믿어온 걸까.

 

영원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시간 축도 없어.

시간을 구성하는 여러 이야기도

고통도 희망도 기대도 욕망도 다툼도

그냥 다 지어낸 거였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사라져.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야.

연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속하지 않아.

그냥 한 점과 같은 순간에 살고 있어. 그것이 전부야.

그게 단순한 진실이었어.

너무 허무하게 단순해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아.

 

다시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

밤 11시 43분, 휴게소에 도착했어.

짠내를 머금은 밤 공기가 훈훈해.

나는 신이 나서 괴성을 지르며 노래해.

너는 주춤하다가 따라서 소리를 질러. 

왁스로 굳힌 머리가 바람에 정신없이 흩어져.

나는 몇 발짝 걸으며 별 것 없는 공간을 바라봐.

네 눈이 조용히 반짝여. 

넌 정말 아름다워.

난 정말 아름다워.

그 밤은 그렇게 거대한 우주 한 가운데

고요히 반짝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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