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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공기가 훈훈했어.
너와 나는 창문을 열고 달렸어.
네가 뭐라고 말했어.
나도 뭐라고 말했어.
둘 다 바람 소리 때문에 들리지 않았어.
그렇지만 둘다 그냥 목청껏 소리질렀어.
내용은 하나도 상관 없으니까.
밤은 아름다워.
밤은 무엇이든 품어줘.
밤은 시간을 벗어나.
아름다운 밤은 그저 무르익는 것처럼 보였어.
그냥 그렇게 연속적으로 이어질 것 같았어.
그러다 갑자기 팟! 사방이 밝아졌어.
더이상 밤은 없어.
차갑고 선명한 낮이야.
너는 잔뜩 굳은 얼굴로 누워 있었어.
눈이 감겨서 보이지 않아.
편안해 보이지 않아.
어떻게 해도 찡그린 네 표정을 편하게 만들 수 없어.
고통이 보였어.
빗방울이 떨어졌어.
빗방울은 차가웠겠지.
느껴지지 않았어.
오늘 아프면 푹 자고 내일 일어나자.
오늘 괴로우면 내일은 나아질 거야.
오늘 싸우면 내일 화해하면 돼.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
왜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까.
왜 내일이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어떤 환상을 믿어온 걸까.
영원은 과거에도 미래에도 없어.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시간 축도 없어.
시간을 구성하는 여러 이야기도
고통도 희망도 기대도 욕망도 다툼도
그냥 다 지어낸 거였어.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사라져.
지금 이 순간만이 진짜야.
연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연속하지 않아.
그냥 한 점과 같은 순간에 살고 있어. 그것이 전부야.
그게 단순한 진실이었어.
너무 허무하게 단순해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아.
다시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어.
밤 11시 43분, 휴게소에 도착했어.
짠내를 머금은 밤 공기가 훈훈해.
나는 신이 나서 괴성을 지르며 노래해.
너는 주춤하다가 따라서 소리를 질러.
왁스로 굳힌 머리가 바람에 정신없이 흩어져.
나는 몇 발짝 걸으며 별 것 없는 공간을 바라봐.
네 눈이 조용히 반짝여.
넌 정말 아름다워.
난 정말 아름다워.
그 밤은 그렇게 거대한 우주 한 가운데
고요히 반짝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