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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외마디

문득 떠오르는

 

그냥 어느 순간 갑자기 순간순간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이국땅 어느 낯선 도시의 차가운 바다밤바람을 맞으며 친구와 찾아간 그저그런 홍합음식점, 그 적당히 상업적이고 적당히 친근하던,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특별할 것 없는 길거리의 모습에서 느껴지던 그 도시만의 에너지.

작은 마을에서 한밤중에 혼자 우두커니 바라보던 공사중 교회당의 스산하고도 설레던 느낌

 

...아니 꼭 저런 특별한 여행장소가 아니어도 상관없어.

그저 북적거리는 번화가를 걷다가 갑자기 벅차오르는 자유로움에 심장이 터져서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뜬금없는 찰나의 느낌들

어느 오후, 지하도에서 계단을 오르며 눈 앞의 환한 빛에 공기중으로 그대로 산화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

폭풍전야, 흐린날 거센 바람을 맞으며, 남몰래 감동에 몸을 떨며 이대로 부서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순간들

 

사실상 나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들이란,

이름 나이 성별 사회적 지위 역할 취향 지식 관점 히스토리 등등... 이 아닌

그냥 이런 찰나의 순간들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이런 느낌들이란, '나'의 개인성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특질 자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 개인성따위가 존재하든 말든 어찌되든간에, 그것이 나를 깊이 움직이는 소중한 순간이기에 역시 나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해야겠지.

나는 사라지고 보편적 인간만이 남는다고 해도.

 

 

그런 의미에서,

그 무엇으로도 표현되지 못한 채, 사라져버리는 저 순간순간들의 기억이 아쉬워서.. 아니 아쉽다는 말로도 부족해서

모르는 새, 기억이 하나씩 없어질때마다 나 자신도 하나씩 부서져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물론 기억은 살아가면서 다시 만들어지는 것이겠지만,

설명하기 힘든 뜬금없는 강렬한 느낌이, 언제까지나 찾아오는 것들일까.

 

 

그리고 이런 느낌들이 나의 본질이라면,

나는 왜 항상 본질을 외면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결국 이런것도 삶, 저런 것도 삶, 모두 배울게 있으니 난 충돌없는 쪽으로 가겠어 운운하며

제너러스하게 다양성 드립을 치면서

사실상 진실에서 일부러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아, 물을 필요도 없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단지, 저런 느낌들은 온전히 개인적인, 내면의 것이기에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똑같이 느낄 수 있을거라고 자만할 뿐이다.

잠이나 자자.

잠과 포만감, 숨쉬기, 통증으로부터의 해방, 추위와 더위로부터의 해방 등 기본적인 삶의 조건 앞에서는 결국 저런 느낌드립도 무릎을 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