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생각들

알맹이의 얄팍함을 마주할 용기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것 하나씩은 있다. 운이 좋은 사람은 잘 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있다.

0.
나는 운이 좋았다. 잘 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대해서는 감수성이 풍부했으며, 음감을 갖고 태어났다. 집에 음악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음악을 접한 것이 자연스럽기도 했다. 지금 와서 깨달은 것인데, 사실 음감은 유리한 능력이긴 하지만, 훈련하면 후천적으로 습득 가능한 것이라서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그냥 걸음마를 좀 더 일찍 하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정도. 단지 그땐 사람들이 그런 걸 몰랐으니까 각광을 받았다.

부모는 나를 자랑하기 위해서 어딜 갈때마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음계로 노래해 보라고 시켰다.
"솔솔솔b미-파파파레-.."
"오, 얘 대단하네. 그래서 음악 시킬 건가?"
"아뇨, 근데 안 시킬려고요. 음악하려면 돈도 많이 들고. 그냥 공부시키려고요."

부모는 나를 자랑한 후에는 꼭 '얜 음악을 잘 하지만 음악은 시키지 않을 예정이다'로 말을 맺었다. 아마 '우리 앤 공부도 잘 하고 음악도 잘 해'라는 이중의 자랑질을 하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1.
유치원에 다니면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음감때문에 진도는 빨리 나갔다. 악보 읽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한 번만 치면 다 외워지기도 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바이엘을 아마 꽤 빨리 뗐다. 선생은 부모를 불러 이 아이는 빨리 피아노를 제대로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웃음기를 머금고 약간 거만하게 말했다. '아 얜 공부시키려고요. 미국 보내고 그러기에는 우리집 형편이 안돼요 호호호.' 바이엘을 떼고 체르니 30번을 들어간 후 얼마 되지 않아 '이제 교양 수준은 그 정도면 됐으니까'라며 피아노학원을 그만두게 됐다. 나는 시집간 고모가 쓰던 방에 들어가서 몇 시간이고 피아노를 두들기며 노래를 불렀다. 이것저것 변형해서 쳐 보기도 하고, 뭔가 만들어 치기도 하고. 피아노가 없이 살던 시절엔 손가락에 음계를 부여해서 머릿속으로 상상 피아노를 연주했다.

2.
결국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다시 피아노를 배웠다. 신동취급 받기에는 이미 나이가 꽤 먹었으나, 아직 초등학생 타이틀을 달고 있었기에 그럭저럭 동네 신동 비슷한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얼른 훑어본 피아노 학원생들 중에는 나만큼 재능 있는 애가 없었다. 지금쯤 재능있는 애들은 이미 전문가의 레슨을 받고 있을테니 당연하다. 피아노 선생이 말했다. "너, 피아노 전공해라." 나는 도도하게 살짝 웃어보였다. 그러나 얼마 뒤 나는 가볍게 손을 다쳐서 피아노를 그만 뒀다. 그게 내 피아노 레슨의 마지막이 됐다.

3.
중학생이 되고 음악으로 예술고등학교를 지망하는 친구를 사귀었다.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같은 애가 음악을 해야 하는데." 나는 살짝 웃어보였다. 피아노 전공을 꿈꾸는 애들이 음악시간에 피아노를 쳤지만, 외워서 치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못 치고 있었다. 나는 도도하게 살짝 웃었다.

4.
고등학생이 되고 질풍노도의 사춘기가 찾아왔다. 공부를 하기 싫었고 학교가 싫었다. 나는 더 이상 도도하게 웃지 못했다.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건 음악인데, 왜 부모는 내가 음악하는 걸 막은 거야." 울부짖었다. 대학만 가면, 제대로 음악을 해 줄테다. 친구에게 다짐했다.

5.
대학생이 됐다. 학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성친구에게 나는 "내가 사실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부모 때문에 못 했고, 너무 늦었고, 불행하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안타깝게도 이성친구는 음치였다. 내 얘기를 들어도 내가 얼마나 "불행한 천재"인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에 더더욱 불행했다. 부모 때문에 내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평생 살게 된 것 같았다. 음대생들이 부러웠다. 아무리 연습해도 이미 음대생을 따라잡을 수 없다. 너무 늦었다. 어쩌면 음악이 내 소명이었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다 잘못됐다. 이제, 괴롭지 않으려면 음악을 잊어야겠다. 나는 대학 밴드나 음악관련 동아리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냥 노래방에서 노래를 자주 부르는 게 다였다.

6.
어른이 됐다. 생업에 밀려 내게 한때는 음악적 재능이 있었고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은 잊고 살았다. 어느날인가 굉장히 오랜만에 듣던 노래를 종이에 옮겨 적어보려했는데... 이전처럼 잘 되지 않았다. 씁쓸했다. 선천적이어서 사라질리가 없다고 생각한 능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곡도 자연스럽게 외워지긴 커녕, 부러 외우려 해도 남들보다 더 못 외운다. 그냥 둔한 뇌를 가진 어른이 됐다. 내게 주어진 선물은 내가 사용하지 않자, 원래 없었던 것처럼 거두어졌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재능임에도 불구하고, 재능이 사라졌단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게 왜. 지금 와서 그게 왜.


7.
나는 이미 사라진 재능을 곱씹어 봤다. 내가 정말 음악을 좋아했을까. 음악을 절실하게 하고 싶었다면 초등학교때나 중학교때라도 집에 난 음악을 전공하고 싶다고 얘기했어야 했다. 어릴 땐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내가 음악을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가 '너 피아노 치고 싶어?'라고 물으면 항상 고개를 저었다. 칭찬받는 애들이 흔히 그렇듯이 착한 아이 컴플렉스까지 있었으니까. 그런데 우리집 형편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다. 세계적 스타가 되기 위한 엘리트교육은 힘들 수 있어도, 보통의 한국 대학에 갈 정도의 교육은, 내가 정 원하면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걸 깨달은 후에도 나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냥 '지금 시작하기엔 이미 늦었다'며 울부짖을 뿐이었다.

진짜 나의 문제는 두려움이었다. 음악은 내가 유일하게 내 주변 누구보다 잘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고, 내 얄팍한 자존심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음악을 시험대에 올려놓을 수가 없었다. 음악으로 세계1등, 아니 적어도 국내에서 1등이 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순간 내가 무너져 내릴 것은 뻔했다. 그냥 기를 펴지 못한 불운한 천재로 호기롭게 남아있는 편이 내 자존감에 훨씬 도움이 됐다. 그래서 그냥 지금 시작해봤자 아예 1위가 되지 못 할 거니까, 시작도 하지 않겠다고 한 거였지.


8.
그러니까, 음악을 소비했던 것은 그냥 내가 천재라고 느끼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경탄하고 칭찬하는 그 자체를 좋아했기에 음악 자체를 좋아한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유치원 때였나, 피아노를 치면서 눈물짓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냥 '이렇게 피아노를 치며 눈물까지 짓는 나는 역시 음악적 감성이 풍부하다'라는 것을 스스로 납득시키는 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유치원 주제에 뭘 눈물이 날 정도로 음악을 이해했겠나.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단조에서는 슬펐고 장조에서는 기뻤던 정도였겠지. 그래, 결국 모두가 알량한 허세였던 것이다.

(사실 별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은 내가 천재라고 느끼게끔 해 줬던 그 얄팍한 재능조차 사라졌다. 이제 일반인들에게도 음악을 배우고 만들 수 있는 길이 많다. 현재 재능이 없는 내가 지금 음악을 만들고 싶은가 하면, 그렇게 절실하지 않다. 그러니까, 결국 내가 사랑한 것은 나의 재능, 그리고 거기서 오는 알량한 우월감이었을 뿐이다. 그걸 지금에도 확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9.
이렇게 길게 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아직까지 내게 그 우월감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자연스럽게 얘기하고 드러낼 수 있을까. 아직 현실에서는 자연스레 드러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쓰는 것도 거의 처음이다. 재능이 있었다는 얘길 하면 남들이 내 재능이 정말 대단한가 테스트해볼 것만 같고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재능이지만서도 여전히 나는 한때는 천재였던 사람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유년기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재능을 광대처럼 시연하고 그걸 평가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 더 성숙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 몸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10.
어른이 되기 위해 누구나 그렇듯, 살면서 철저히 무너졌고 그 힘듦을 이겨나가야 했던 때가 몇 번 있었다. 이유없이 미움을 받으며, 좋아하지도 않고 수준에 맞지 않는 영역을 억지로 파면서 느낀 자괴감을 통해, 장기간 거짓 소문과 정신적 폭력을 통해 철저히 고립되면서, 고깝지 않은 시선 속 타인들과 힘들게 연애하면서 등.
어떤 경우든, 이런 경험을 통해 갖고 있던 알량한 자존심이 철저히 짓밟히고, 나 자신을 저 밑바닥까지 철저하게 부정하게 되고. 그 후엔 천천히 바닥에서부터 몸을 일으켜, 결국 나와 타인과 만물을 무념으로 동등하게 바라보게 됐다. 일시적으로나마.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통해 마냥 천진하기만 하던 이전보다는 성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 보면 그건 내가 무너져도 충분히 극복할만한 영역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핵심은 건드리지 않았다. 여전히 내 속에는, 사람들 앞에서 베토벤을 광대처럼 시연하고 그걸 평가받아야 할 것 같은, 칭찬에 굶주린 네 살짜리 아이가 꼭꼭 숨어 있다. 이제 너도, 밖으로 나와야 한다.

'잡생각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반대의 길  (0) 2015.01.29
'주부' 앞에는 항상 '평범한'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0) 2015.01.28
편두통과 문학 예술사 ;  (0) 2014.11.25
허례허식을 참기 힘들다  (0) 2014.08.26
집단주의  (2)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