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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집단주의

이전에, 여성 앞에서 남성들이 군대얘기를 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대라는 것이 많은 경우 여성은 가지 않고 남성만이 (끌려) 가는 곳이기에, 남성들간의 동료의식을 강화하여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하게 된다는 논리였겠죠.
였겠죠, 라고 남의 일 말하듯이 쓰는 이유는, 저는 의도나 맥락 따위 개무시하고 '무조건 ㅇㅇㅇ해야 해'라는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냥 어떤 군필남성이 여자 앞에서 군대 얘기를 꺼내는 순간 교양없는 미친놈으로 만들어버리는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어설프게 배운 여자 중 운동권 시절의 마지막 잔재가 아스라히 남아있던 분들 중 저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분들이 좀 계셨죠.


어느 날, 어떤 남자 사람이 군대에서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어떤 나이 많은 여자 사람이 매우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남자사람에게 군대라는 곳을 배경으로 한 개인적인 기억은 말소되어야 하는 걸까요? 그 남자사람이 하던 군대 이야기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그냥 인간사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지도 않고, 듣는 사람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일단 화를 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유치한 남녀싸움에 대한 얘기도 아니고요, 여성주의에 대한 몰이해 등을 언급하고 싶진 않고요, 다른 한 가지 비약을 하고 싶습니다. 그냥 이렇게 군대얘기에 화를 냈던 그 여자사람의 태도가, 진보적인 여성주의를 보여주었다기보다는 도리어 집단주의적 정서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고요. 우리가 남이 아닌, 집단주의적 정서에서는, 표현하는 개인보다 표현을 지켜보는 집단의 감성이나 일체감이 훨씬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도 단지 눈꼴시렵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타인의 눈깔까지 걱정해주면서 지랄하고 시비거는 상당수의 교양없는 인간들이 바로 이런 집단주의적 감성을 잘 보여주는 케이스겠죠. 일체감을 해치니까요. 군대얘기하던 남자사람이 타인에게 소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랄하던 여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체감을 해치니까요. 개인의 진솔한 이야기따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의 의도나 맥락 개무시하고 일단 소재가 위화감을 주거나 배알꼴리게끔 하면 안되죠. 일체감을 해치니까요. 만약 타인과 다른 점이 있고, 이 다른 점으로 인해 타인에게 질투/소외/불편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그냥 셧더퍽업하고 말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만수르가 진지하게 자기가 형보다 가난하다며 소외감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게 만수르 개인적으로는 진솔하다고 해도 동양권에선 그냥 말도 꺼내면 안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듣는 닝겐이 배알 꼴리니까. 제 생각엔 배알 꼴리는게 존나 치사한 자세인 것 같은데, 이 나라에서는 배알 꼴리게 하는 튀는 새끼가 잘못인 거예요. 그러니까 눈치가 시발 맥락이나 진솔함, 윤리따위보다 훨씬 중요한 거라고요. 


사실 이 군대얘길 언급하고 싶었던 건 아니고, 
다른 에피소드를 생각하다 여기로 샜다.

존나 싫다. 양심 좀 있어봐라. 잣대는 똑같이 적용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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