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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징조를 읽고 싶다

I.

최근 눈에 띄게 삽질을 하고 있다.

 

1. 지갑분실

모처럼 재산을 싹싹 긁어모아 지갑 안에 슥 넣고 집을 나섰는데, 지갑을 분실ㅋ

분실한지 (최대) 5분도 안 돼서 없어진 걸 눈치채고 길거리를 헤매다 분실물 신고된 것이라도 있는지 확인하러, 바로 인근 경찰서에 갔으나

경찰서 왈 : '업무시간 아님 ㅇㅇ. 내일 신고하셈'

벙 쪄서 112에 신고했으나 112왈 : '전화로는 신고 안 됨. 인터넷으로 하셈'

 

아놔... 길거리에서 인터넷으로 어떻게 신고하냐고.. -_-

아무튼 삽질 끝에 신고했으나, 찾기야 글렀고, 이미 조낸 귀찮은 일 투성이.

 

집에 갈 돈이 필요했으나 위치도 그렇고, 상황이 여의치 않았던 관계로 그냥 꾸역꾸역 몇 시간을 걸어감... 뭐 그날 내로 들어가긴 했으니.

물론 그 길을 걸어간 건 나름 새로운 경험이긴 했으니, 나쁘진 않았음.

 

 

2. 한 쌍으로 구성된 물건 중 1개를 자꾸 잃어버림

요즘 계속, 한 쌍으로 된 물건의 한 개만 잃어버리고 있음. (젓가락 귀걸이 등)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한쌍 중 1개를 잃어버리고 있어서... 집에는 외기러기들이 난무 -ㅁ-

내 평생 무엇을 잃어버려도 바로 찾거나 아예 잘 잃어버리질 않았었는데, 그러다보니 요즘 일어나는 이런 일련의 현상들이 조낸 신기함.

 

 

3. 키보드를 쳐야 하는데 손가락 다침

이거야 뭐 크게 다친거 아니니까... 별 지장없으니 뭐, 그렇다 치자.

 

 

4. 길 헤맴 / 문 닫음

지도 표시가 잘못됐다거나 하여, 한 번에 찾아가는 곳이 없으며, 막상 고생해서 가보면 문을 닫기 일쑤.

 

 

5. 넘어짐

길가다가가 울퉁불퉁하다고 넘어지고 다리 접지르고 신발 가볍게 망가져서 고치고.

 

 

6. 기타

그러고 보니 그릇도 깨졌고 뭔가 망가진 물건들이 눈에 띄네. 흠냠.

 

 

II.

그나저나,타지에서 우연히 들어간 서점에서 우연히 읽은 책에서,

'징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그땐 그냥 '어, 이건 현대사회에서 거의 멸종된 기능 아닌가'이러고 말았건만,

지금은 그 책이 심히 궁금하다.

내용이, 몸이 아픈 부위라던가 반복되는 이상한(주의를 끄는) 일련의 일들이 자신에게 주는 메시지, 교훈 등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는데 정확히는 기억 나지 않는다. 그땐 그냥 별 생각 없이 재미로 읽고 말았으니까.

지금 그 책이 궁금한 이유는, (이 징조는 절대적으로 나쁘다 or 좋다 / 이런 이분법적 판단보다는) 이런 현상들이 모여모여 가리키는 어떤 흐름이 있다면, 그 흐름의 방향 정도는 어느 쪽인지 감지하고픈 실용적인 목적으로 읽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실용적인 목적 외에도... 상징적인 이유로 궁금하기도 하다.

 

 

뭐랄까,

평소에는 물론 별 생각 없이 살지만, 간혹 주시하게 될 때면, 삶이란 정말 문학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순간순간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무미건조한 것 같은 이 일상이

사실은 상징이나 알레고리, 복선, 스토리라인 등이 의외로 꽤나 명확한, 하나의 문학작품과도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오늘 하루는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도, 조금 더 길게, 일 주일, 한 달, 육 개월 등 크게 보면 주욱 연계된 다양한 상징체계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징조'라는 것은 문학에서의 하나의 복선이나 상징과도 같아지는 것이다.

 

 

III.

뭐 이건 물론 말만 추상적으로 해서 그렇지, 나뿐만 아니라 많이들 느끼는 점일 것이다.

당연하기도 한게,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삶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반대로 삶의 거울인 문학 프레임을 통해 다시 삶을 보는 것도 가능한 것이지.

 

 

그런데 어쩌면 원초적인 (초끈이든 뭐든) 상위차원의 에너지는, 하위차원의 다양한 프레임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데(양자물리학에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소립자 개념과도 비슷) 그것들이 바로 내가 바라보는 삶과 징조들일지도. 즉, 내 삶을 관통하는 에너지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상위의 차원에 있지만, 현실세계(하위차원)의 entpworld frame으로 바라보면, 내 프레임에 맞는 일부분만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그것은 현상적으로는 진실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 왜냐하면 하위차원에 존재하는 비루한 나는 절대로 상위차원에 존재하는 에너지 전체를 볼 수 없으니까.

 

예를 들어, 원초 에너지의 모양이 3차원 코끼리 모양이라고 쳤을떄 그보다 하위차원인 2차원에 사는 나는 코끼리 발바닥모양, 혹은 코끼리 옆모습밖에 못 보는 것. 따라서 나로서는 상위차원인 3차원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 혹은 상상하고 조합하려 노력하지만, 그것이 본질에는 완전히 다가가진 못하는 것.

뭐 이것은 가정일 뿐이므로, 2차원에 나타나는 확실한 현상 자체를 본질로 취급하고 살아가자는 것이 세계인 것이고 내가 할 공부인 것이지만.

 

 

 

아아 이건 말보다는 그림이 편할테지만 귀찮네. 아무튼.... 문학적 삶이라는 것도 내가 창조한 프레임일 수도. 

아아 그러니까, 하루히가 되자.ㅋㅋㅋ

 

 

어느새 나 자신의 삶인데도 그냥 제삼자 입장처럼 관조하게 돼 버린다.

그런데 넘 졸려서 헛소리 쓰고 있는 듯. 역시 언어는 어려워.

오늘까지만 놀아야겠다. 책이나 찾으러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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