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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외마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어릴 때 나는 대체로 잘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기 일쑤였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땐 남보다 책을 조금 더 빨리 읽는 능력이 있었기에, '독서'라고 자신있게 취미를 말했고,

악기연주 역시 남보다 습득이 좀 더 빨랐기에(그냥 평균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재능) 자신있게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남보다 떨어지니 이거 참 씁쓸하구만)

 

반면 그림그리는 것을 분명 싫어하지 않았음에도, 그림을 남들보다 뛰어나게 굉장히 못 그렸기에 취미가 만화 그리기라고 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발레와 무용을 동경했음에도 하위 1%에 드는 엄청난 몸치였기에 이 역시 취미로 삼고자 하는 생각도 못했었고.

 

물론 조금 이상한 아이이긴 했어도 속으로는 우등하고 착한 어린이가 되고자 하는 (그리하여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가 숨어 있었기에,

욕구 충족 및 스스로의 자존감 유지를 위해, 내가 잘 하는 것을 취미로 선언했던 것 같다.

그냥 술술 잘 풀리고 잘 하니까 즐겁기도 하고, 잘 하니 칭찬받아서 우쭐하기도 하고... 뭐 그런 긍정적 자극들로 인해 이런 활동들을 좋아하게 됐던 거겠지.

 

 

잘 보면, 이것은 결국 내가 그 활동들을 하는 것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 아니라,

그 활동들을 함으로써 얻게 되는 각종 심리적 만족감 (칭찬, 애정, 능력치상승에 따른 자존감상승)이,

내가 활동을 좋아하게 하는 원인이 됐던 것이지.

결국 모두 얽혀있는 현상 아니냐고 반론할 수 있겠지만... 자세에 차이가 있다.

자존감으로 취미를 선택하는 경우는 필연적으로 그 취미에서 능력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하고 고문하게 된다. 물론 스스로는 그것이 고문이라고 절대 생각 못하지만. 즉, 내가 이 훈련과정을 거쳐 어느정도 레벨이 되면 진짜 이것을 즐길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들볶게 되지. 뭐 스스로 택한 취미니까 합리화가 잘 돼서 덜 괴롭긴 하겠지만. 반면 그냥 좋아하는 것을 하게 되면, 그냥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항상 즐겁다. 이게 사실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의미가 되겠지.

 

 

사실 취미에 대한 나의 자세는 치열한 한국적인 정서와 맞물려있다. 뭘 해도 어느 정도는 잘 하려고 달려드는 정서. 극단적으로 성실한 민족같으니라고.

 

 

그래서 지금 나는, 좋아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조심스러워진다.

지금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매우 다르기때문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말하면 한국의 다른 사람들은 어느정도 기본적으로는 잘 하는/아는 것으로 생각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냥 언어 자체에 충실하게 대답하려고 해.

'좋아하는' 것은 보상이나 반응에 상관없이 그냥 행위 자체로 가슴 뛰고 즐거운 것이니까.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만드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솔직한 자세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의 취미는....

 

 

쇼핑

 

 

밖에 없나?

ㅋㅋㅋㅋ

돈지랄의 순간은 가슴뛰고 즐겁다.

뭐 아무튼 그런의미에서 내 취미는 패션, 염색,....

이정돈가?

 

 

굉장히 뻔한 이야기인데, 까보면 자존심이나 자포자기 등의 감정이 뒤섞여 의외로 알기 어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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