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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한국인의 위아더월드 개념의 사적시공간

한참 바쁜 와중에 아는 사람을 만났다.
반가워하는데 차라도 한잔 할 시간이 되냐고 묻는다. 한국인 특유의 정서다. 뭐든 같이 먹어야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많은 경우 사실이긴 하지. 가까워지고 싶어하는지 여부는 차치하고.

정말 시간이 없었기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사실이니까. 그럼 며칠 뒤는 어떠냐고 한다. 그래서 잠잘 시간도 없어서 모르겠다고 했다. 밥 먹을 때 보자고 한다. 밥은 때우기만 하기에 안된다고 했다. 상대는 그게 뭐냐고, 항상 시간없다는 핑계냐며 얼른 시간을 정하란다.

상대를 보기 싫은데 거절은 안 하고 질질 끄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진짜다. 반가운 걸 떠나 시간이 정말 없다. 약간 과장하면 잠도 못 자고 밥먹을 시간도 없다. 아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멍청하게 헤매는 까닭이긴 하다. 그럼에도, 사실 완곡하게 말은 하지만 혀끝까지 튀어나오는 말을 간신히 삼키고 있었다. 


"내가 왜 잠자고 먹고 쉬는 시간까지 줄여 약속을 확정해가며, 님을 꼭 그렇게까지 봐야 합니까?"

왜 내가 내 최소 생존시간을 쪼개서까지 사회생활을 , 그것도 공적인 일도 아닌 사적 시간을 빼내야 하냐고. 바쁘다면 바쁜 줄 알아야지, 왜 알아듣질 못 하고 설득하려 하는 건가. 


설령 이것이 나와 사귀는 사람이라던가 가족이라고 해도 나는 용납하지 못한다. 왜 나의 사적 시간은 엄청 당연한 듯이 너희를 위해 쪼갤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왜 언젠가 사람은 꼭 조만간 약속을 정해 길게 봐야하는 건가.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관계가 끊어진다고 보는 건가. 사람의 삶의 패턴이 왜 다 자기랑 똑같다고 생각하나. 어째서 '밥'은 타인과 먹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 왜 밥먹을 때조차 나를 내버려두지 않으려는 건가. 그 시간은 어째서 내가 사회화돼야 하는 시간이라고 자기 맘대로 단정짓는 것인가. 자신과 삶의 패턴이나 전제가 다른 인간을 상상조차 못 하는건가. 

지금처럼 숨만 간신히 쉬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사적 시간은 나 스스로 선택한다. 내가 괜찮다고 판단하면 괜찮은 거고, 내가 내 시간에 대해서 아니라고 말하면 아닌 줄 알아야지. 이유따위 밝힐 필요도 없는데 친절하게 매크로 돌리느라 말해주다 보면 솔직히 굴욕감 느낀다. 일이 몰려서 일을 많이 하고 이딴 것보다, 내가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사적 시간에 대해 문책을 당하고 그 시간을 확정지어 남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 더 노예같다. 내가 왜 나의 사적 시간에 대해 너희에게 설명해야 하는건가. 이 나라, 이 씨족사회의 개인주의 개념은 정말 엉망이다. 정말 개짜증나. 


물론 내가 만나겠다고 말한 사람은 진짜 만나려고 만나는 거다. 억지 따위 없다고. 단지 '거절'은 정말 '거절'을 뜻한다고. 아무튼 남의 공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녀노소성향취미불문하고 딱 질색이다. 그냥 개체로서 사람을 접할 기본이 안 된 거다. 아니 뭐 그런 '정 많은' 인간이 어떻게 살든간에 난 상관없다. 단지 씨족사회에서만 그러고 살란말이다. 나한테까지 그런 걸 요구하지 마라. 최소한 나랑은 더럽게 안 맞는다. 타인의 영역에 침범해갈 용기? 最悪だ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