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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들

너희들의 레이스

0. 머리를 비우고 가만히 멈춰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하늘이 맑았다. 바람은 청명했다. 지나가는 사람은 그냥 지나갔다. 모두가 그냥 하나의 배경이다. 나와 하늘과 바람과 땅만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그리고 무엇때문에 괴로워하는 건가.

고작 게임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뭐가뭔지 알 수 없어졌어.

아니, 알고는 있지만 내치지 못할뿐이겠지.





1. 아주 어릴 때, 

사람들은, 자신들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문제에 내가 진지하게 반응해주지 않으면 나를 이상하게 취급했다.

'아 그래. 이게 화 내야 하는 상황이구나. 그리고 이건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공감가지 않아 당혹스러웠지만, 사람들을 관찰하고 행동양식을 배워나갔다.

소유욕도 없었고 이기려는 마음도 없었지만, 그들이 진지하게 임하는 이 레이스를 무의미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

그 순간 무리에서 도태되니까.

그리고 완전히 도태돼서 살아갈 자신이 없으니까. 딱히 강한 의지력을 갖지 않은 나 따위가 말이지.

그들의 행동양식대로 행동해주기 시작했다.

행동뿐만이 아니다. 감정적으로도 똑같이 동요하는 연기가 필요해.




2. 처음에는 생존전략으로 시작했는데, 

나에겐 무의미했던 그들의 레이스가 어느덧 내 감정까지 좌지우지한다.

나라면 무의미하게 스쳐보낼 것들이지만, 그들은 분노하고 상처입는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감정을 상처입힌데' 대해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게 해서 무의식적으로 '그것이 중요하다'는 그들의 가치관을 학습당한다.


그렇게, 나는 그들이 만든 레이스의 노예가 되었다.




3. 그렇다고 그들의 가치관까지, 학습당할 필요는 없어. 

감정적으로 압박받고 상처입을 필요도 없어.

이전에 pussy가 말했지만 물드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과연 언제, 어떻게, 내가 온전히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오랫동안 게임에 동참하다보니 자꾸 나를 잃으려고 한다.





p.s.1. 유아기의 기억이다.

나는 내 머리를 잡아 뜯는 동생을 바라보고 있다.

동생은 나를 때리고 있었고 나는 동생을 때릴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된다고 듣고 보고 습득해서 알고 있다.

옆에서 어떤 어른이 부추긴다. '야 ㅄ아 그냥 때려 때려'

나는 이런 상황에선 비로소 화를 내고 폭력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권투나 격투기와 같은 폭력게임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을 때리지 말라고 말하는 동시에 사람들은 폭력을 보고 열광한다. 원칙에 혼란이 생긴다. 그러나 화를 내고 폭력을 써야하는 이유를 나에게 납득시키고, 감정을 달군다. 마침내, 정말로 격앙된 감정으로, 자연스럽게 폭력을 쓴다. 동생이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리고 그 어른은 '동생한테 그러면 쓰냐'며 나를 혼내는 동시에, 안심한다. 보통 아이구나.

역할이 끝난 나는 다시 원칙이 무엇인지 혼란을 느끼며 평온한 나 자신으로 돌아간다.



p.s.2. 갑자기 제임스조이스가 생각난다. 완벽한 세상의 모순. 



p.s.3. 주욱 크게 입을 벌리고 있는 공허함때문에 며칠동안 식물놀이중이다.

형태는 미이케다카시의 이치더킬러에 나오는 카키하라와 비슷? 귀 밑까지 찢어진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공허하든 말든 세상은, 상상은, 생각은, 과장된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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