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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INTP 혹은 ENTP인 내가 '안부 묻기'의 효용성을 깨닫고, 사회화를 위해 안부 묻기를 어떻게 활용하게 됐는지를 담은 에피소드. 

ENTP 혹은 INTP의 이해를 위해 조금 도움될 수도 있는 글.




1. 안부 묻기에 응대

A씨가 카톡으로 말을 건다.

"여행은 잘 다녀왔어요?"


아. 바로 알겠다. 나에게 뭔가 부탁을 하려는 거겠지.

A씨는 내 친구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잡담을 하기 위해 카톡으로 말을 걸 이유가 없다. 뭔가 부탁을 하기 전에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안부를 묻는 거겠지.



의도를 알기 때문에, 내 여행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사람에게 너무 짧게 대답을 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굳이 안부를 묻는 사람에게는 '굳이' 이런말을 해야할까.. 싶은 말도 첨가해서 해 줘야 한다.

"네ㅎ. 조금 피곤하지만 늙어서 그런가봐욬ㅋ"


사실 내가 쓰고 싶은 말은 '' 한 글자뿐이다. 그렇지만 뭔가 부탁을 할 A씨의 입장을 고려해 굳이 ''와 '조금 피곤하지만 늙어서..ㅋㅋ'라는 말을 덧붙인다. 부탁을 하려는 사람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하고 싶어하고, 그만큼 상대의 반응에 미묘하게 더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내가 '네' 이렇게만 쓴다면 A는 '이 사람이 기분나쁜가' 의심하며 조심스러워할 것이다. '네ㅎ'까지만 치면 기분나쁜가 의심하진 않겠지만 불편해할 것이다. 그만큼 미묘하지만 긴장이 조성되겠지. 그건 나도 원하지 않는다. 가까이 지내야 하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굳이 쓸데 없는 자기비하드립 한 문장에 ㅋㅋ를 함께 넣는다.


'ㅎㅎ'


A씨는 내 성향을 어느 정도는 알기 때문에 굳이 '어디어디 다녀왔어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길게 이끌어가지 않는다. 대화를 길게 끌어갈 때도 있지만, 나도 긴 대답은 하지 않는다. 목적이야 뻔하니까. 나한테 다른 볼일이 있는 거고, 내 신상이 궁금한 건 아니란 거.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고 'ㅎㅎ'로 끝나는 걸 보니 오늘은 급하게 부탁할 일이 있나보다.


'혹시 지금 시간이 되면 간단한 부탁 좀 해도 괜찮을까요? 혼자 하기 힘든 거라'


아. 과연 그렇지. 물론 해 줄 마음이 있다. 애초에 내가 맘에 들어하기도 하고 가까이 지내야하기도 하는 사람이니.




2. 안부의 효용성

이전에는 이 구태의연한 안부절차를 이해할 수 없었다. 네가 나한테 관심 없는 거 뻔히 아는데. 그리고 친밀한 관계가 아닌 이상, 상대한테 관심 없는 건 인간이라면 당연한 건데. 그러니까 굳이 나에게 인간적으로 관심있는 척 하면서 이런 필요 없는 질문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처음부터 '혹시 지금 시간 돼? 한 시간 정도 도와줄 수 있어?' 이렇게 물어보는게 내겐 더 자연스러운데. 

안부가 약간은 위선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 스스로는 이런 안부를 상대에게 굳이 묻고 싶어하지 않았었다. 억지로, 기계적으로, 안부를 물어봐도, 마음 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말이라 그런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상대도 나도 함께 불편해했지.



그렇지만 이제 나도 이 '구태의연한' 안부절차의 기능을 충분히 이해하고 가끔은 써먹기도 한다. 안부절차는 의미 없는 형식만은 아닌 것이다.

안부를 묻는다는 것은, '나는 너를 개별적인 사생활을 가진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일종의 의사표시다. 물론, 이 안부묻기는 앞의 대화에서 들먹인 '혹시 지금 시간이 되면'과 거의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긴 하다. 사실상 의사표시 기능으로써는 썩 효율적이진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안부묻기의 기능은 이뿐만은 아니다. 적어도 1-2합의 사생활 대화나눔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대화에 대해 '배경음악'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냥 미묘하게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카페 배경음악과도 같은 것. 


그러니까, 구태의연한 안부절차 묻기란 카페 배경음악으로 치면 그냥 샘플링 이빠이 돌린 대중음악같은 역할이다. 그냥 어디서 들었는지 구분도 안 되는 되게 뻔한 음악. 그러나 어쨌든 듣는 동안에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약간 대화에 생기를 더해주는 기본적 역할은 해 주는 그런 대중음악 bgm.


이렇게 안부의 존재의의를 납득한 후에는 안부 묻기가 좀 더 쉬워졌다. 그리고 기왕이면 맨날 똑같은 말 복사해서 하는 것보단, 그냥 약간이라도 재치 넘치거나 새로운 말을 하는 식으로, 나에게 맞는 안부묻기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먼저 내가 듣고 싶은 안부형식에 대해 생각해 봈다.

별거 아니라고 해도 기왕이면 살짝 더 재치넘치는, 기존 포맷과는 약간 다른 안부를 쏴 주는게 재미라도 있으니까 더 좋다. NP들의 성향이려나.


그러니까 나한테는, 

'여행 잘 다녀왔니?'보다는, 

'여행가서 안 디졌냐?'가 좀 더 낫다. 어차피 아무 의미 없는거 다 아는데 좀 더 안 뻔한 말을 던지는게 나으니까. 내가 이 맥락에서 '뭐라고? 넌 내가 죽길 바란거야?'라는 식으로 쓸데 없이 진지하게 반응하진 않을테니까. 


아니면 (태국 다녀왔다면) '똠얌꿍 스멜 죽이네?'같이 약간은 압축적인 표현까지 있으면 더 좋다.'여행 잘 다녀왔니/태국은 어땠니/태국음식 맛있었겠다/똠얌꿍도 먹었겠네/와 똠얌꿍 냄새 나는 것 같아'의 쓸데없는 대화과정 5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으니까. 이건 직관형들의 비약적인 특성이 반영되는 부분이기도 할 듯.





3. 내가 안부묻기

그래서 내가 가끔 다른사람에게 일부러 안부를 묻게 되면, (내가 듣고 싶은) 개소리+압축적인 안부를 던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워싱턴 디씨에 있는 사람에게, '식물갤러질중이심?'이라고 말을 걸며, 

'워싱톤 디씨에 갔구나/그러고보면 디씨는 커뮤니티 사이트인 DC inside와 발음이 같지/ 거기서 편히 쉬고 있니?/디씨에 평화로운 식물갤러리라고 있는데 마치 거기서 갤질하는 것처럼 평화롭게 있겠구나'의 4단계를 압축해서 묻는 동시에 개소리스러운 표현을 쓰는 것이지.

조금 더 친절해주려면, '디씨겠네. 식물갤러질중?'이라고 설명을 덧붙여 안부를 묻기도 한다. 최근에는 이 정도의 친절한 표현을 주로 쓴다.


그러면 사람에 따라 '?? 넌 역시 이상해'라는 반응이 나오거나 'ㄴㄴ여기서도 야갤러임'이란 반응이 나온다만, 

상대의 반응이 어느 쪽이든 간에, 내 간단한 안부인사는, '나님은 너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의사표시를 함과 동시에 편안한 대화를 위한 bgm밑밥을 까는 역할은 웬만큼 해주는 것 같다. bgm이 못 알아쳐먹는 병신음악이라고 해도 그냥 그 '난 너를 편하게 생각하니 편하게 얘기하자'는 분위기 자체는 전달되잖아.



뭐 이게 나의 나름 사회화된 안부묻기 방식이다.

어릴 때부터 이랬던 건 아니고, 대가리가 큰 후 안부인사의 존재의의를 이해한 후에 저렇게 하기 시작했다.

내가 ENTP인지 INTP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인간도 있군 ㅇㅇ을 이해하기 위한 글로 읽어주면 됨.



쓰고나니 엄청 뻔한 걸 그냥 지루하게 썼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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